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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인공장기 배양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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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보건복지부가 4일 내놓은 생명과학 보건안전윤리법 시안 발표를 계기로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돼온 배아(胚芽)와 관련한 복제실험의 적법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임신 이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조항.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 김진석 사무관은 "장기(臟器) 생산을 위해 국내 의료계에서 연구하고 있는 체세포복제나 동결수정란이용법은 원칙적으로 금지의 대상" 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팀이 인간의 귀에서 피부세포를 떼어내는 체세포복제법으로 간(幹)세포 직전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한 데 이어 11월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팀은 폐기처분될 동결수정란을 녹여 심장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박세필 박사는 "지금도 수만명의 환자들이 장기가 없어 생명을 잃고 있다" 며 "이 법안대로라면 당장 연구를 중단해야 할 판" 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시안은 복제실험의 허용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이미 영국정부가 배아복제는 물론 체세포복제까지 질병치료의 목적으로 허용했으며, 미국도 체세포복제는 불허했지만 폐기처분될 동결수정란을 이용한 실험에 대해선 연방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도록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종교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시안의 마련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가톨릭환경연대 박흥렬 실장은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며 수정 14일까지 배아단계를 단지 세포덩어리로 보는 학계의 입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말했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한재각 간사는 "장기부족 문제는 기증운동 등 다른 대안부터 먼저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 라고 지적했다. 모호한 예외조항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안에 내년초 구성될 국무총리 직속의 국가생명안전윤리위원회에서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배아연구를 허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체세포복제나 동결수정란이용법이 원칙적으론 금지지만 국가생명안전윤리위원회를 통과하면 실험이 허용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박세필 박사는 "최근 시민단체의 반대로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에서 해촉됐다" 며 "신설될 국가생명안전윤리위원회에도 전문가가 배제되고 여성계나 시민단체가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 이제 겨우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국내 배아연구는 전면 중단될 위기" 라고 말했다.

국민대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는 "배아연구의 허용범위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수" 라며 "국내 실험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아 연구를 내년초 법안구성 때까지 잠정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배아=수정 직후 14일까지 구체적인 장기가 형성되기 직전의 세포 덩어리. 현재의 배아에서 원하는 장기세포만 선택적으로 배양하는 기술이 가능하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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