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닥 잡은 준조세 정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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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준조세 정비방안은 '기업활동에 장애가 된다' 며 재계에서 끊임없이 요청했던 각종 부담금 폐지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경제 5단체장이 정비를 요구했던 준조세는 모두 19가지. 정부는 이중 여덟가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부과하는 '조세성 부담금' 으로 분류한 뒤 과밀부담금과 광역전철부담금 등 두가지를 제외한 여섯개(개발부담금.농지전용부담금.산지전용부담금.폐기물부담금.폐기물처리예치금.교통안전분담금)를 폐지하거나 제도를 개선했다.

과밀부담금 등은 대도시 인구 집중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고 그대로 뒀다. 나머지 것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른 것이거나 사회보험료 형식이어서 조세성 부담금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정비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정부의 조치가 아직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경련 신종익 규제조사본부장은 "일단 정부가 준조세를 정비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고 전제하고 "그러나 정비 대상이 적어 기업부담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고 지적했다.

신본부장은 특히 "각종 부담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공개토록 하는 기본법 제정이 내년으로 늦춰져 자칫 개선 의지가 퇴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 덧붙였다.

◇기업부담 완화=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는 것 중 개발부담금(수도권 이외 지역).농지전용부담금.산림전용부담금.교통안전분담금.진폐사업주부담금 등 다섯개를 폐지하고 폐기물처리예치금.폐기물부담금 등 두개는 제도를 개선한다.

이중 1990년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토지공개념 제도의 일환으로 도입한 개발부담금(택지개발이나 공단을 조성할 때 개발이익의 25% 부과)은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징수하지 않는다. 수도권 지역을 제외한 것은 과밀억제를 위해 아직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토지공개념 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개발부담금은 이 제도의 3대 축중 하나였는데, 나머지 두 축인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초과소유부담금은 이미 폐지됐기 때문이다.

농지나 산림을 개발할 때 공시지가의 20%를 부과하는 농지전용부담금과 산림전용부담금도 동일한 대상에 비슷한 명목으로 징수하고 있는 대체농지조성비.대체조림비와 중복된다는 판단에 따라 폐지대상에 포함시켰다.

종이팩.유리병.가전제품 등의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92년부터 제조업자에게 사전에 부과하는 폐기물처리예치금은 회수하지 못한 분량만 사후에 받도록 고쳤다.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의 처리를 위해 제조.수입업자에게 물리는 폐기물부담금도 합성수지가 최종 제품이 아니라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민부담 완화=문예진흥기금 모금.국제교류기여금.도로교통안전관리기금부담금 등 세개를 폐지하고 건강증진기금부담금은 제도를 개선한다.

영화관 등 문화시설 이용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강제 징수해온 문예진흥기금 모금의 경우 당초 2004년으로 돼 있던 폐지 시기를 2년 앞당겼다.

대신 이 기금에서 지원하던 문화예술 창작.보급이나 출판산업진흥 사업은 부족 재원을 국고에서 충당한다.

운전면허소지자.자가용소지자 등으로부터 거둬 교통범칙자의 안전교육 재원으로 사용하는 도로교통안전관리기금부담금과 여권발급 신청자에게 부과하는 국제교류기여금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맞지 않아 폐지한다.

이밖에 담배사업자와 의료보험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건강증진기금부담금은 의보재정 악화를 감안, 담배사업자에 대한 부담금(갑당 2원)만 남겨두기로 했다.

이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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