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도 안되는 경매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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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전세금 이하로 나온 법원 경매 물건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연립.다세대주택과 상가의 경우 3~5회 유찰돼 입찰가격이 전세보증금.임대료의 80~90%까지 곤두박질한 경매 물건이 적잖다. 낙찰해 전세를 놓으면 자기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임대료를 밑도는 경매 물건은 외환위기 때 말고는 없었다"며 "경매로 집과 상가를 구입하려는 소액 투자자에게 좋은 기회지만 경매 물량이 늘고 있으므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전세금 이하에 집 마련=인천 계양구 효성동 다세대주택 20평형은 지난 1일 감정가(5300만원)의 30.6%인 1621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이 집의 전세보증금은 2000만원. 낙찰가에 세금 등 부대비용 200여만원을 합쳐도 전세금보다 낮다. 낙찰자는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주인이 된 셈이다.

지난달 30일에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다세대주택이 감정가(7200만원)보다 4600만원 싼 2610만원에 주인을 찾아갔다. 전세보증금은 3500만원. 낙찰자는 지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이 집을 거저 구입한 것이다.

이런 경매 물건은 인천 등 수도권에 특히 많다. 인천의 경우 경매 물건이 2002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는데, 70~80%가 연립.다세대주택이다.

◆ 임대료 안고 상가 주인=상가도 2000만~5000만원만 있으면 낙찰할 수 있는 게 많다. 낙찰 후 세를 다시 놓아 투자금액을 곧바로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 내수경기 침체로 서울 역세권 등 요지에서도 이런 물건이 속속 나온다.

지난 4일 안산시 본오동 상가 31평형이 감정가보다 8400만원이나 싼 4111만원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전세보증금 3000만원을 안고 1500만원만으로 상가 주인이 됐다. 같은 날 서울 노원구 중계동 유경데파트 3층 18평형은 7회 유찰 끝에 감정가(8000만원)의 21%인 1710만원에 주인이 결정됐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10평짜리 상가도 감정가(7000만원)의 18%인 1231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사무실이 많은 역세권에서도 괜찮은 경매물건이 꽤 나온다. 서울 마포구 대농빌딩 지하 1층 상가 30평형은 최근 감정가(1억4500만원)의 37%인 5377만원에 낙찰됐다. 이 상가의 임대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0만원. 그대로 재임대한다 해도 임대수익률만 연 12.2%에 이른다.

◆ 아직은 낙관 일러=임대료 수준까지 떨어진 물건은 투자매력이 있지만 '숨겨진 이유'가 있을 수 있으므로 꼼꼼히 알아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지옥션 조성돈 차장은 "경기 침체로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고, 경매 물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 차익을 노린 투자는 금물"이라고 말했다.

세금.명도비 등 부대비용으로 낙찰가의 8% 안팎이 더 들어가는 점도 고려해 자금계획을 짜야 한다. 정확한 시세 파악도 중요하다. 연립.다세대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일정한 가격 체계가 없다. 감정가가 높게 잡힌 경우 2~3회 유찰됐더라도 시세보다 싸지 않을 수 있다. 또 진입로가 넓어 차량이 드나들기 쉽고, 주차공간이 확보된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

성종수.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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