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유기농 쓰려면 원료의 95% 이상이 유기농이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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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8면

지난해 봄, 화장품 업계는 석면 파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일부 화장품에서 석면이 함유된 ‘탈크’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탈크는 가루 형태의 광물질로 파우더·파운데이션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화장품 시장 자체의 위축이 우려됐다. 그런데 이 파동으로 오히려 유기농 화장품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유기농 화장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미량의 유기농 성분만 집어넣고도 버젓이 ‘유기농 화장품’이라고 광고했다. 실상을 모르는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지난해 말 ‘유기농 화장품 표시·광고 가이드 라인’을 발표했다. 올해부터는 아무 화장품에나 ‘유기농’이라고 붙일 수 없도록 했다. 화장품 업체들도 이 기준에 맞는 유기농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 잡기에 나섰다.
 
국내엔 아직 유기농 인증기관 없어
식약청에서 발표한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제품 설명서에 ‘유기농 화장품’이라고 표시하려면 전체 원료 비중의 95% 이상이 천연 재료여야 하며, 그중 유기농 원료의 함량이 10% 이상이어야 한다. 혹은 물과 소금을 제외한 내용물의 전체 구성 성분 중 70% 이상이 유기농 원료여야 한다.

‘유기농’ 화장품, 오해와 진실

제품 이름에 ‘유기농(Organic)’을 쓰는 건 더 까다롭다. 물과 소금을 제외한 내용물 전체 구성 성분의 95% 이상이 유기농 재료여야 한다. 예를 들어, 온뜨레(유기농 화장품 편집 매장)가 파는 ‘퓨어 오가닉 아르간 오일’은 성분 표시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유기농 원료 비중이 전체의 95% 이상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100% Natural(자연주의)’ ‘Authentic(믿을 만한)’ ‘친환경’ 등이라고 표시했다고 해서 이 제품이 유기농 화장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주의 화장품은 유기농 화장품을 포괄하는 넓은 범위다. 곧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많은 화장품 브랜드에서 나오는 제품이 유기농 화장품은 아닌 셈이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의 대명사 격인 ‘더바디샵’ 제품 가운데 유기농 화장품으로 인정받은 것은 ‘뉴트리가닉스’라는 이름이 붙은 데이크림·세럼 등 총 7종이다.

유기농 화장품인지 아닌지는 유기농 인증 마크를 확인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현재 미국·프랑스·일본·호주 등 29개국 총 332개 기관이 유기농 여부를 인증해 준다. 국내에는 아직 유기농 인증 기관이 없다. ‘한경희생활과학’의 자회사인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오앤(O&)의 박선영 매니저는 “에코서트(프랑스 인증 기관)의 기준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 출시 3개월 만에 아시아나 기내 판매품으로도 들어갔다”며 “다만 인증 과정에 돈이 많이 들어 에코서트 정식 인증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를 중심으로 국내에도 유기농 인증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유기농 인증 마크에는 ‘USDA오가닉’ ‘에코서트’ ‘BDIH’ 등이 있다. USDA오가닉은 미국 농무부가 농산물을 비롯해 농산물이 들어간 화장품·생활용품 등에 발급하는 마크다. 화장품의 경우 전체 성분의 95% 이상이 유기농 원료이면 이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다. 알티야오가닉의 김헌석 대표는 “USDA오가닉은 사설 단체가 아니라 미국 농무부가 보증하는 유기농 인증 마크로 수시로 암행 감사를 펼치는 등 관리를 철저히 해 가장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팔리는 화장품 가운데서는 ‘에코서트’ 마크를 받은 제품에 많다. USDA오가닉보다는 인증 기준이 덜 까다로운 편이다. 식약청과 비슷하게 전체 성분의 95% 이상이 천연 성분이고, 제품 성분 중 10% 이상이 유기농 원료면 된다. 실리콘 등과 같은 화학 성분은 사용할 수 없지만 5% 내에서 벤조산·살리실산 등 보존제는 사용할 수 있다.

보관 어렵고 비싼 게 흠
유기농 야채가 좋은 줄 알면서도 선뜻 못 사는 것은 비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기농 화장품도 다른 비슷한 종류의 화장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일반 화장품보다 용량이 적은데도 가격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싸다. 유기농 화장품의 용량이 적은 것은 천연 재료를 사용해 보관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기농 화장품은 보통 개봉 후 6개월 내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놔두면 천연 원료가 부패할 수 있다. 다른 화장품보다 보관 상태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한불화장품 정해영 팀장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2008년 말 생산설비에 대한 에코서트 인증을 받았지만 유기농 제품은 화장수를 포함한 4개 품목만 만들고 있다”며 “유기농 화장품을 찾는 소비자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망은 밝다. 일부 지역에 국한됐던 대형 마트의 유기농 식품 코너가 지금은 거의 모든 매장으로 퍼진 게 희망이다. 유기농 화장품 인증 기관인 ‘에코서트 차이나’는 일반 화장품 시장이 연 5% 성장하는 데 반해 유기농 화장품은 연간 40%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인 제품으로는 식약청의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가이드 라인 시행 후 더바디샵이 내놓은 뉴트리가닉스 7종이 있다.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7개 중 스무딩 아이 크림·데이 크림·나이트 크림 등 3종은 주름 개선 식약청 인증을 받았다. 이브로쉐는 코리아나화장품이 국내에 들여온 프랑스의 유기농 전문 화장품 브랜드다. 이 가운데 ‘이브로쉐 컬처 바이오’ 10종은 에코서트·코스메바이오·AB 등 세 가지 유기농 인증을 모두 받았다. 이 중 가장 까다로운 것은 AB 인증으로 원료가 재배되는 토양부터 시작해 재활용 용기까지 인증 기준의 대상이 된다. 알티야오가닉은 유럽 불가리아의 알티야 그룹에서 만든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다. 화학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손으로 수확하고 가공한 100% 천연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다. 미국 농무부의 유기농 인증 마크인 ‘USDA오가닉’ 인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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