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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아무도 못 먹게 큰 열매 맺는 나무,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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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야생초 학교
황대권 글
윤봉선 그림, 토토북
152쪽, 1만원

『야생초 편지』의 저자가 쓴 어린이책이다. 일곱 명의 초등학생들과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 자락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야생초 학교’를 꾸렸던 경험을 다큐멘터리 동화처럼 엮었다. ‘…거야’‘…란다’ 식의 친근한 입말체와 세밀화 기법을 활용한 그림으로 현장감을 살렸다.

‘야생초 학교’의 교육은 야생초의 이름과 특징, 효용 등을 익히는 과정이 중심이다. 하지만 공부의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 교사 역할을 야생초가 했다.

씨앗 하나에도 자연의 위대한 섭리가 숨어있었다. 복슬복슬 솜털을 달고 있는 엉겅퀴 씨앗,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의 도꼬마리 씨앗, 콩깍지가 ‘딱!’ 터지는 순간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는 돌콩 등 씨앗마다 자손을 멀리 퍼뜨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 또 버찌 씨처럼 새에게 먹힌 뒤 똥으로 나와 번식하는 씨앗도 많았다.

『야생초 학교』의 저자는 “풀 이름 하나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풀을 통해 우리 모두의 고향인 자연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야생초 교육을 시키는 목표다. [토토북 제공]

사실 이런 설명이야 여느 자연생태책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의 특장은 여기서 이어지는 생각의 깊이에 있다. ‘씨앗’장(章)에선 “만약 나무가 아무도 먹을 수 없는 큰 열매를 맺는다면?”이란 질문을 던졌다. 과연 어떻게 될까. 생각이 이어진다. 새들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지나갈 테고, 나무는 하는 수 없이 열매를 자기 발 아래 떨어뜨릴 테고…. 결국 나무 밑에서 돋아난 수많은 싹들. 하지만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데다, 어미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어 햇빛을 받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욕심쟁이’ 나무는 자손을 퍼뜨리지 못하고 홀로 늙어갈 수밖에 없게 될 터다. 그래서 “남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 처음에는 손해보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는 돌고 돌아서 열 배 백 배의 이익이 돼 돌아온다”는 철학적인 결론이 나온다.

실제 현장에서 나온 아이들의 좌충우돌 질문도 생각을 더 깊게 한다. “호랑이처럼 힘센 동물은 다른 동물을 잡아먹기만 하고 남에게 내어주는 게 없잖아요”란 문제 제기다. 생태학을 전공한 저자가 답을 했다. “호랑이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 자체가 공생(共生)”이란 것이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지 않으면, 사슴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 풀과 나무를 깡그리 먹어치워 산이 황폐해질 테고, 결국엔 사슴도 먹을 게 없어 죽고 말 테니 말이다. 단답식으론 풀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어렴풋이나마 손에 잡힌다.

아이들이 야생초를 만져보고 그려보고 느껴보면서 즐기는 과정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야생초로 비빔밥·김치를 만들어 먹었고, 차도 직접 덖어 마신다. 자연과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었을 게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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