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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울과 담양의 ‘기부 천사’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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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 우리는 천사 한 분을 떠나 보낸다. 그제 85세로 돌아가신 김춘희 할머니다. 오전 11시에 영결식을 치르면 시신은 고려대 의대에 기증된다. 장기기증 서약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외출할 때 항상 장기기증등록증을 가지고 다닌다”던 할머니였다.

1945년 이북에서 홀로 월남한 김 할머니는 6·25전쟁 직후 충남 홍성의 보육원에서 10년간 고아들을 보살폈다. 이후 행상·식당일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장애인단체 봉사 등 선행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행복한 기부 캠페인’에 1호 회원으로 등록하고 전 재산인 전세금 1500만원을 사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기초생활보호수급권자인 할머니에게는 매달 38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끼니를 복지관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때우는 등 아끼고 아껴 월 30만원가량 저축했다. 모인 돈으로 2006년 250만원, 2007년에는 500만원을 이웃 돕기 성금으로 흔쾌히 내놓았다. 할머니의 처지를 뻔히 아는 모금단체 관계자들이 과연 받아도 될지 망설일 정도였다. 정작 본인은 “나라가 늙은이한테 무언가 주려고 애쓰는데 나도 아껴서 나라에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김 할머니 앞에서 낯을 들기도 부끄러울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김 할머니가 눈을 감은 4일 오전, 전남 담양군청에 이름 모를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났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할아버지가 중학생을 시켜 200만원이 든 상자를 군 행정과에 전달했다. 급히 기부심사위원회를 소집한 군청 측은 성금을 보낸 사람이 지난해 7월 익명으로 2억원을 기부한 독지가와 동일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서 2억원으로 조성한 ‘등불장학금’에 이 돈도 보태기로 했다고 한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정치마저 꽉 막혔다지만, 이런 분들이 있기에 사회가 그나마 활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 할머니는 기초생활보호자였고, 담양의 독지가가 쓴 메모는 일부 맞춤법이 틀려 있었다. 이분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각자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