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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모인 시니어봉사단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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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동요 작곡가 이창규 할아버지가 4일 오후 서울 은평노인복지관에서 수강생들에게 동요를 가르치고 있다. [조용철 기자]

서울 은평구 진관동의 이창규(76) 할아버지는 ‘동요 전문가’다. 45년 교직생활 틈틈이 작곡한 동요가 100곡을 넘는다. 1999년에는 자작곡을 모아 동요집과 CD를 내기도 했다.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던 이 할아버지는 4년 전부터 은평구 노인복지회관에서 매주 한 차례 노인 동요교실을 열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노인이 되면 성대가 어린이처럼 줄어 음역이 넓은 가요나 가곡보다 동요가 몸에 더 맞다”며 “동요 부르기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해 치매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명예교수인 윤복자(76) 할머니는 1950년대 중반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를 지냈다. 윤 할머니는 55세 때부터 배워 수준급이 된 스키 솜씨로 용평스키장에서 순찰 자원봉사를 한다. 스키를 잘 타는 노인 8명과 함께 설원 곳곳을 돌며 위험한 상황이 생기거나 수리할 곳이 생기면 운영본부에 긴급 연락을 한다.

이 할아버지와 윤 할머니처럼 전문지식·경험을 가진 노인들이 봉사단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 시니어 전문 자원봉사단’을 발족했다. 봉사단은 변호사, 의사, 체육지도자, 기자 등 12개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65세 이상 노인 1016명으로 구성됐다.

의사·간호사 출신 봉사대원 96명은 지역을 나눠 저소득층이나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 내과·치과 등 무료 검진 서비스를 하고 노년 건강관리 교육을 맡는다. 변호사·법무사 64명은 채무나 사기 등 노인들이 노출되기 쉬운 문제를 중심으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할 예정이다. 체육지도 봉사원 58명은 생활 속 운동 요령과 노년기 건강관리 방법 강의를 맡고 전직 교사 169명은 문맹 노인 학습지도와 어린이 한자교실을 연다. 소방안전 전문가 13명은 화재 예방과 안전점검단을 운영한다. 서울시는 대원들이 1주일에 두 번 이상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봉사 계획표를 만들어 나눠줄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날 발대식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단법인 열린의사회, 서울시간호사회, 글로벌시니어건강증진개발원과 자원 봉사 공동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들 단체는 소속 시니어 회원들에게 봉사 참여를 독려하고 필요할 경우 봉사단을 지원한다. 서울시 신면호 복지국장은 “능력 있고 전문지식을 가진 은퇴 노인들의 자원봉사 욕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사회도 이분들의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며 “시니어 봉사단을 통해 노인계층의 참여와 나눔이 활성화되고 세대 간 통합·소통의 장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은 지난해 말 현재 519만 명으로 4년 전(432만 명)에 비해 20% 정도 늘었다.  

글=박태희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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