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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우리 나라 좋은 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는 요즘 행복한 몽상(夢想)에 문득 문득 빠지곤 한다. 이를테면 꿈속에서의 '우리 나라 좋은 나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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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선(大選)에서는 '대통령의 기득권 포기' 가 가장 큰 이슈다. "대통령이 되면 나부터 기득권을 포기하겠다. 검찰권.조세권.공천권, 이 세 가지다. 역대 대통령들이 누려온 가장 큰 기득권 셋을 모두 버리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의 틀을 새로 놓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

***검찰 바로서야 경제도 잘돼

이런 공약을 내거는 후보가 스스로 나오면 더 좋고, 만일 나오지 않는다면 유권자.시민 단체가 "이런 후보를 밀자" 고 나서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그런 공약을 내걸도록 만들면 된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새 대통령이 자리에 앉기 직전까지의 모든 위법 행위는 '없던 일' 로 하자. 그래야 온 나라가 죄인으로 넘치는 일을 막고, 정치 보복이 두려운 세력의 방해도 막을 수 있다.

대신 새 정권이 출범하고나서부터의 모든 위법 행위에는 예외가 없도록 하자. 대통령이든 야당 총재든, 국회의원이든 시위 참가자든, 장관이든 말단 공무원이든, 부실기업주든 노조원이든.

그랬을 때 어떤 것들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상상만 해봐도 희망에 벅차다. 우선 누구든 법만 지키면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다.

검찰이 누구를 봐주는 것 같다는 의혹이 없다는 것은 검찰이 세니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다.

'정치적 해결' 이란 모호한 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줄을 대면 뭔가가 해결된다는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조세권이 응징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확신은 성실 납세를 이끌어내는 가장 큰 담보다.

더욱 더 뿌듯한 희망은 그리 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투명해져야 할 것은 기업의 지배구조만이 아니다.

그 이전에 권력의 행사와 법의 집행이 투명해지고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법이 보장하면 경제 주체들의 거래비용.갈등이 줄어들면서 경제적 효율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문득 외환 위기 직후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 교수를 만났을 때 그가 강조한 '가장 근본적 제도의 개혁(constitutional reform)' 이 다시 떠오른다. 가장 근본적인 틀을 제대로 놓지 않는 개혁은 안된다고 그는 거듭 말했었다.

가장 근본적인 틀이 미국에선 헌법(constitution)이다. 국가 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최고의 권위있는 제도.계약으로서 헌법을 만들었다.

그와는 다른 출발점에서 해방 이후 건국 헌법을 만들었고 대대로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섰던 우리에게 이제 개혁을 위해 새로 놓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틀은 무엇인가. 크고 작은 자의적 권력들을 양파 껍질 벗기듯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그 핵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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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깨고 나니 현실이 바로 보인다.

아하, 경제가 이 지경인 것과 검찰 탄핵 소동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구나. 외환 위기 이후 나왔던 '봐주기 경제(cronyism)' 란 모욕적인 소리를 다시 듣지 않고 경제도 제대로 돌리려면 검찰 바로 세우기는 필수구나.

***대통령부터 기득권 포기를

정현준 게이트에서 보듯 벤처든 지식산업이든 정부가 도와준다고 나서면 고위직이든 청소부든 반드시 뒤탈을 내는구나. 정부 지원은 곧 규제고 이권이자 부정이니까. '마지막 결전' 식의 사정 바람으론 해결될 일이 아니구나. 경기가 가라앉아 큰일이라지만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언젠가 때가 되면 경기는 도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총선과 남북관계 개선 속에 미뤄오던 숙제를 이제 와서 몰아치기로 하느라 더 키운 경기의 낙폭(落幅)과 사람들의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또 경기가 회복된다 한들 대통령은 '원칙대로' 를 되뇌고 장관은 부도를 막으러 뛰어다니며 검찰 탄핵 소동이 여전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춥다. 늘어나는 노숙자들을 보며 몽상에 빠져드는 것은 회피가 아니다. 앞이 잘 안 보일수록 우리는 상상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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