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재검표] 수작업 재검표 놓고 지루한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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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김진 특파원] 미국 차기 대통령 자리의 열쇠를 쥔 플로리다주 개표결과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팜비치 카운티가 16일 주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수작업 재검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 대법원 결정으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중요한 고지를 차지했다. 물론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플로리다 주정부가 받아들이도록 법원이 결정해줘야 보다 확실하게 승리에 다가서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팜비치 수작업 재검표 착수로 자신에게 유리한 '수작업 전선' 을 크게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팜비치 카운티의 43만여표 중 무효표는 1만9천여표다. 그 가운데 1만표 정도가 대통령 투표란에 아무런 구멍이 없는 것들이다.

이 카운티에는 다른 지역에서 은퇴해 이주한 고령자들이 많다. 팜비치 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노인 의료보험 정책 등 때문에 고어를 좋아하는 고령 유권자 상당수가 시력이 나쁘거나 손목의 힘이 모자라 구멍을 뚫는 철필을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어 진영은 기계가 무효로 처리한 이 표들 중에서 유효표가 대거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정이 비슷한 브로워드 카운티에서도 수작업 재검표가 진행 중이다. 고어측은 2개 카운티에서 1천표만 더 나와도 현재의 열세 3백표를 만회하고 해외부재자 투표 개표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부시측은 주 대법원 결정의 의미를 축소하면서 굳히기 작전에 총력을 쏟고 있다. 부시 진영은 법원의 판단이 수작업 재검표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지, 재검표 결과를 선거 최종 득표수에 포함시킬 것을 명령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부시 진영과 공화당원인 캐서린 해리스 주 내무장관은 예정대로 오는 18일 최종 개표결과를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시는 자신이 고어와 달리 재검표 싸움에 매달리지는 않는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전략인 듯 16일 총 1백20여만표 중 자신이 4천여표 뒤진 것으로 나타난 아이오와의 재개표 요구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두 진영의 법정싸움은 이제 두 번의 대회전(大會戰)을 남겨두고 있다. 1차 대결은 17일 오전(현지시간)에 있을 주 순회법원의 결정이다.

법원은 주정부가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2차 대결은 며칠 내로 닥칠 연방 항소심 결정이다.

부시측은 고어 진영이 진행하고 있는 일부 카운티의 수작업 재검표가 다른 유권자들의 동등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수정헌법 14조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고어측은 플로리다주가 판단할 문제를 연방법원이 결정하면 주와 연방간의 권리 구별을 규정한 수정헌법 10조를 어기게 되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각각의 전선에서 패하면 상급심으로 싸움판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가운데 해외 부재자 개표와 수작업 재검표 결과가 공개되면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그때는 이 복잡한 싸움에 여론까지 가세해 일이 더욱 꼬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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