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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회생가닥 선회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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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건설과 현대증권.투신 등 정몽헌(鄭夢憲)회장 계열사들이 최악의 위기국면을 넘길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鄭회장측의 자구계획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정부나 채권단에서 이들 기업의 운명과 관련한 긍정적인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1백일을 맞아 13일 각각 기자간담회를 가진 진념(陳稔)재정경제부 장관이나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에 그런 미묘한 변화가 담겨 있다.

예컨대 李위원장이 이날 '자구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낸다면' 이란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현대건설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 얘기를 꺼낸 것은 그동안의 정부 분위기와는 달라진 느낌이다.

장관들의 이같은 발언들은 현대의 강력한 자구책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장관들의 발언은 현대측이 나름대로 알맹이가 있는 자구책을 들고 나올 것이란 감을 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현대건설, 회생으로 가닥〓주말을 고비로 현대건설에 대한 경제장관들의 발언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 5일 이근영 위원장은 "앞으로 현대건설에 신규 자금지원은 없을 것이며, 진성어음을 자기 힘으로 못막으면 무조건 부도처리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13일 陳장관이 "현대건설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아야 한다" 고 강조한 것이나, 李위원장이 '시장이 평가할 만한 현대의 자구책' 을 전제로 하면서도 "신규 자금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 고 발언한 것은 이같은 기존 입장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감자 및 출자전환 동의서도 현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까지 염두에 둔 '비장의 카드' 에서 자구책의 이행을 강제할 담보로 의미가 축소됐다.

결국 이같은 정부의 변화 조짐은 현대건설마저 죽이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과 현대측의 자구안에 파격적 내용이 담길 것이란 관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증권.투신의 외자유치에도 비슷한 입장전환이 감지된다. 李위원장은 사실상 공적자금 지원을 뜻하는 AIG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가 "법 테두리 안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방안은 검토하겠다" 고 밝힌 대목은 그동안의 정부입장에서 한걸음 앞으로 나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AIG로부터 어떤 요구도 전달받은 적이 없는 만큼 지원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없다" 는 말만 되풀이 해왔다.

공적자금까지 대줄 수는 없지만 AIG가 투자한다면 정부차원에서 도와주겠다는 '성의표시' 로 보인다.

◇ 잦은 입장 바꾸기는 문제〓현대가 한고비를 넘기고 있다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지원방침보다 시장의 평가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정몽헌 회장의 자구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1주일사이에 다시 바뀐 것으로 보이는 정부의 방침 역시 시장의 신뢰 얻기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남아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鄭회장의 자구계획이 기대에 못미칠 경우 정부의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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