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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무대만 빌려와 '해외 공동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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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04~2005년 빈 슈타츠오퍼에서 상연되는 새 프로덕션은 '베르테르''노르마''돈 카를로''마농 레스코''알라딘과 요술 램프'등 6개 작품. 그중 12월 12일 개막하는 에리히 콘골트의'죽은 도시'는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 등 3개 단체과 함께 첫 선을 보이는 프로덕션이다.

최근 세계 오페라계의 화두는 '공동 제작'이다. 거의 연중 무휴로 오페라를 상연해야 하는데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뛰는 데다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동 제작의 경우 선(先)투자와 제작비 분담으로 새 프로덕션도 가능해 스탠더드 레퍼토리에서 과감히 탈피할 수 있다.

무대 세트와 의상은 물론 성악가.오케스트라.합창단까지 몽땅 옮겨 다녀야 하는 순회공연보다 제작비가 훨씬 저렴하다. 또 첨단 무대기술과 연출의 새 트렌드를 리얼 타임으로 접하면서 선진 무대기술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하지만 최근 국내 오페라단.극장의 해외 교류 사례들은 본래의 공동 제작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의전당이 오는 20~23일 상연하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1998년 필리포 산저스트 연출로 베를린 도이체 오퍼에서 선보인 프로덕션의 리바이벌이다. 6년전에는 무대 연출의 새 트렌드로 각광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낡은 무대세트의 재활용'일 뿐이다. '선진국 무대 제작 시스템과 노하우 전수'라는 명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지난달초 국립오페라단이 후지와라 오페라단.오랑주 페스티벌과의 합작으로 국내 상연한 '카르멘'은 현지(국내) 오케스트라를 쓰지 않아 제작비가 20억원이 넘었다. 예산 절감이라는 공동 제작의 장점을 못 살려낸 데다 게다가 막판에 주역 가수 3명이 '건강 상의 이유'로 무더기로 교체돼 빈축을 샀다.

공동 제작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자주 상연되지 않는 작품의 새로운 연출을 리얼 타임으로 접하면서도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공립 단체들이 앞장서서 외국 무대 렌탈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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