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플로리다 팜비치 투표용지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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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검표가 진행 중인 플로리다주에서 일부 투표 용지가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켜 선거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대선 사상 전례없는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8일 오후(현지시간) 고어 후보가 플로리다에서 패배한 것으로 나타나면 투표용지에 문제가 있던 곳에서 재투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유권자 3명이 이 문제로 선관위를 상대로 소송을 내자 당 차원에서 이를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역별로 투표용지를 제작, 논란이 되고 있는 투표 용지를 사용한 곳은 플로리다주 67개 카운티 중 한 곳뿐이다.

그러나 1차 개표에서 이 주의 부시.고어 득표 차이가 1천7백여표에 불과해 실제로 잘못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될 경우 대선 향방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면 대통령 당선자 확정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려 미 정국이 한동안 혼란에 빠질 위험도 있다.

이 투표 용지는 대선 후보들의 이름이 마주보는 양 면에 인쇄된 것으로 정.부통령 후보와 소속 정당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투표소에 비치된 도구로 양쪽 면 사이에 마련된 후보별 칸에 구멍을 뚫어 기표하게 돼 있다.

문제는 왼쪽 면 둘째(첫째가 부시)에 이름이 적힌 고어 후보에게 투표하려면 셋째 칸에 구멍을 뚫어야 하지만 자칫 둘째 칸에 구멍을 내기 쉽다는 것이다. 왼쪽 면 둘째 칸에 고어의 이름이 인쇄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 칸에 기표를 하면 오른쪽 면 첫째 칸에 이름이 인쇄된 팻 뷰캐넌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결과가 된다.

공화당은 투표용지가 다소 복잡하지만 유권자들이 실수할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ABC방송에 따르면 선거 당일 "투표 용지 때문에 엉뚱한 곳에 기표했다" 고 선관위에 항의한 유권자도 많았다.

팜비치에 유달리 무효표와 뷰캐넌 표가 많이 나왔다는 것도 민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43만여명이 투표한 이 곳에서 뷰캐넌은 3천4백7표를 얻어 0.8%를 득표했다. 이 주 전체 평균 득표율(0.3%)의 세배에 가까운 득표율이다.

이 지역에서는 또 기표를 두번하는 등의 무효표가 1만9천표나 나왔다. 투표자 비율로 따져 다른 지역에 비해 서너배 가량 많은 수치다. 팜비치는 노인 연금생활자가 많아 상당수 유권자가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잘못 찍은 표의 절반만 더해도 고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은 유권자들로부터 "투표소에서 실수했다" 는 서명을 받고 있다. 흑인단체 등은 이날 "특히 흑인들이 실수를 많이 했다.

투표 용지를 교묘하게 만든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 이라고 선관위에 항의했다. 민주당은 플로리다주 다른 지역에서 개표전에 투표함이 사라졌다가 발견되고 컴퓨터 집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주는 부시 후보 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곳이다.

팜비치 선관위는 민주.공화당 관계자와 법조인을 불러 이들 문제에 대해 논의한 뒤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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