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하고 싶던 ‘센 드라마’… 4kg짜리 칼 한 손으로 휙휙 돌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추노’에서 쫓기는 무관 송태하를 열연 중인 오지호. “사극에서 자연스레 보이고 싶어서 코·턱수염을 따로 분장하지 않고 평소 기르고 다닌다”고 했다. 성형주 대학생 사진기자[후원 : canon]

드라마에선 대길(장혁)에게 쫓기는 몸, 현실에선 시간에 쫓긴다. 데뷔 12년 만에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KBS2 TV ‘추노’의 송태하 역 오지호(34).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 전남 화순에서 올라와 수원 세트촬영장으로 가는 도중이라 했다. 며칠 전엔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야구단’ 사이판 전지훈련을 다녀왔다고. 예능에선 야구배트, 드라마에선 월도(月刀)를 휘두르는 이 남자 오지호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 본 ‘오감’ 인터뷰.

강혜란 기자

시視  오지호의 무기는 무엇보다 생김새. 한 예능프로에서 “누나가 고현정, 남동생이 배용준을 닮았다”고 말해 파문(?)을 불렀을 정도로 유전자 덕을 많이 봤다. 서구형 외모가 사극과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더부룩한 코·턱수염에 달라진 눈빛 연기로 우려를 일축했다.

‘추노’는 보는 쾌감이 넘치는 드라마다. 빼어난 영상미와 함께 출연자들의 ‘빨래판 복근’은 남자의 질투를, 여자의 환호를 산다. 오지호는 “팔다리는 문제가 아닌데 복근 유지가 어려워 데뷔 후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몸에 대한 칭찬 중에 ‘말근육’이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선 채 포즈를 취하자 긴 머리에 쭉쭉 뻗은 다리가 한 마리 야생마 같았다.

청聽 조선 최고 무관 송태하는 감정 내색이 없는 사람. 칼로 모든 것을 말할 뿐이다. 실제 쩌렁쩌렁하기보다 윤기 있게 나직한 음색이다. “태하는 천상 군인이잖아요. 아비 손을 타면 애 버릇이 없어진다고 해서 한번 안아 본 적도 없는·….” 청군에게 살해된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은 오지호 최고 연기로 꼽힌다.

액션만큼 어려운 게 섬세한 멜로 연기. “무뚝뚝하면서도 혜원(이다해)에 대한 연심을 드러내는 톤 조절이 어렵다”고 했다. “감독이 평소에도 카리스마 넘치는 과묵한 모습을 주문했는데, 원래 분위기를 띄우는 편이거든요.” 곁에 있던 매니저가 “제주도 액션 촬영 때도 긴장하긴커녕 종혁(황철웅 역)이랑 둘이 ‘시건방춤’을 춰서 촬영장이 뒤집어졌다”고 전했다.

촉觸 두 손을 주목했다. 조각처럼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두툼하고 따스했다. 스스로도 ‘머슴 손’이라며 웃었다.

“원래 손발이 크고 손재주가 없어요. 대신 운동신경을 타고 나서 둥근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잘해요. 야구는 ‘천하무적야구단’에서 보시는 대로고요(그는 4번 타자다). 볼링도 배운 지 1년 만에 에버리지 180을 쳐요.”

타고난 운동감각 덕에 처음 해본 무술연기도 수준급이다. 태하가 휘두르는 월도는 무게가 4㎏에 이르는 데다 크게 획을 그려야 해서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장)혁이가 워낙 무술을 잘 해서 처음엔 비교될까 걱정됐는데, 이젠 저도 한 손으로 칼을 돌릴 정도예요. 하하.”

후嗅 ‘추노’는 강한 마초 냄새의 드라마다. 쫓고 쫓기는 남자들의 땀냄새가 안방까지 훅 풍긴다. 수 개월째 야외촬영이 지칠 만도 한데 피곤할 줄 모르고 하고 있단다. “(장)혁이나 (이)종혁이나 다 동년배라서 촬영장에서 마음이 잘 맞아요. 그리고 ‘내조의 여왕’ 끝나고 정말 남자다운 역할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로맨틱 코미디(‘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로 떴지만 ‘센 드라마’가 잘 맞는 것 같단다. “가만 못 있고 헤집고 다니는 스타일이라서 야외촬영도 신나게 다녀요. 평소 못 가는 생태보호구역도 가잖아요. 제가 추위도 안 타고 잠 못 자도 끄덕 없어요.” 드라마에선 지·덕·체 완벽한 남자, 현실에선 어수룩한 노총각이다. “작품 고를 때나 여자 볼 때도, 남들이 눈이 높다고는 하는데….”

미味 우리 나이로 서른 다섯. “이제야 연기 맛을 알겠다”고 했다. “20대 때는 마흔 쯤엔 사업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대로 연기하면서 늙고 싶다는 생각을해요. 그 동안 우여곡절 많았지만 다 잊었고, 이젠 연기만 생각하며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한 번 클릭 수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장면, 곧 공개된다. 추격전 사이사이 애틋한 마음을 표현해온 태하와 혜원의 키스신이다. “갈대밭 액션, 청군과의 전투신과 오열 장면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3일 9회가 방송되는 ‘추노’는 제주도에서 인조의 원손을 구하는 것으로 전반부가 마무리된다. 곽정환 연출은 “지금까지가 1대1 추격전이었다면 앞으로는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서로 얽히면서 이야기의 폭이 넓어진다”고 예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