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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활판인쇄술 발명 … 면죄부·비판문 모두 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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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457년 구텐베르크가 독일 마인츠에서 간행한 『시편』의 일부. 문자‘B’의 기둥 부분에 개가 새를 쫓는 모습이 보인다. 지극히 정교하고아름답게 만들어진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찬송가, 기도문, 죽은 이를아름답게 만들어진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찬송가, 기도문, 죽은 이를기(刊記)가 들어간 최초의 문헌이다.

20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역사전문 케이블방송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지난 1000년 동안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 100명을 뽑았다. 힐러리 클린턴, 헨리 키신저 등이 패널리스트로 참여한 이 프로그램에서 1위로 뽑힌 인물은 놀랍게도 활판인쇄술의 선구자 구텐베르크였다. 인류문명에 기여할 생각이라곤 전혀 없이 중세 말 혼란기에 돈을 벌어 재정난을 타개할 생각뿐이었던 일개 ‘벤처 사업가’가 갈릴레이·마르크스·뉴턴 등을 제치고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선정된 것이다. 그는 출생일도 정확하지 않아 1400년께로만 알려져 있다. 사망일은 1468년 2월 3일이었다.

활판인쇄술 발명의 계기는 13, 14세기에 책 만드는 재료가 양피지에서 종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양피지는 대단히 값이 비쌌다. 가축 한 마리에서 양피지를 4장밖에 얻을 수 없었으므로, 성경 한 권을 만들려면 200~300마리의 양이나 송아지를 도살해야 했다. 게다가 인쇄술 발명 이전에는 1200쪽짜리 책 한 권 제작에 필경사 두 명이 꼬박 5년을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펄프로 만든 종이 덕분에 책값이 크게 하락했다. 자연히 읽고 쓰기를 배우는 비용도 저렴해졌다. 이렇듯 문자해독률이 높아지자 더 저렴한 서적을 요구하는 시장 규모가 커졌다. 이런 수요에 부응해 구텐베르크는 당시 첨단벤처사업이었던 인쇄술에 뛰어들어 1450년께 활판인쇄술을 발명했고 1455년에 성경을 인쇄했다.

인쇄술은 사상의 신속하고 정확한 전파에 기여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문에 붙였다. 이 글은 활판인쇄술에 의해 대량 인쇄되어 불과 몇 달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면죄부 비판 논리를 널리 퍼뜨려 종교개혁의 불길에 부채질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 제작한 인쇄물 중에는 면죄부도 있었으니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16세기까지 독일은 다른 지방 사람과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로 지역별로 언어의 차이가 심했다. 하지만 루터의 독일어 번역 성경이 인쇄술을 통해 널리 보급되면서 그 번역어가 독일 전역에 표준어로 정착했고 독일의 문화적 민족주의를 확산시켰다.

구텐베르크로부터 5세기가 지난 뒤 또 하나의 혁명이 있었다. 인터넷의 발명이다. 하지만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인터넷도 그 핵심 콘텐트는 활자를 통해 축적된 텍스트다. 아날로그적 내공 없이 맞이하는 디지털 시대가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의 활자 콘텐트는 얼마나 충실한지 돌아볼 때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