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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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단국대 교수로 임용된 구족화가 오순이씨가 학생들 앞에서 그림을 그려보이고 있다.

유년시절 사고로 두 팔을 잃고 두 발로 그림을 그려온 구족(口足)화가가 대학교수에 임용됐다.

단국대(총장 김승국)는 11일 구족화가 오순이(38.여)씨를 이번 학기부터 예술대학 동양화 전공 초빙교수로 임용했다고 밝혔다. 구족화가가 대학교수로 임용된 것은 오교수가 처음이다.

오 교수는 세 살 때 경남 마산의 집 앞 철도에서 기차에 치여 두 팔을 잃고 혼자서는 제대로 앉거나 화장실도 갈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일반 학교에 진학한 그는 초등학교 4년 때 미술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은 그는 두 발로 잡은 붓이 자연스레 움직일 때까지 발이 퉁퉁 붓도록 연습했다고 한다.

오 교수는 1987년 평생의 은인인 장충식 당시 단국대 총장을 만났다.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오 교수의 사연을 전해들은 장 전 총장의 후원으로 86년 단국대 동양학과에 입학해 4년간의 학업 끝에 학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그 뒤 '더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만에서 2년간 연수를 마치고 94년 8월 한국인 최초로 중국 내 미술대학으로는 최고를 자랑하는 중국미술학원(저장성 소재)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 이 학교 입학심사위원들이 "장애인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실력을 의심해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보이기도 했다.

"중국 유학 시절 오전 8시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어요. 나중엔 식사시간을 알리는 자명종을 옆에 두고 그림을 그릴 정도로 공부했지요."

이런 노력 끝에 11년간의 공부를 마친 그는 오는 14일 박사학위를 받는다. 산수화를 주제로 한 오 교수의 학위는 중국미술학원 최초로 예술창작이론과 실기전공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아직 실력도 많이 부족한데, 모교에서 강의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한 오 교수는 "그림이란 손으로 그리든 발로 그리든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따뜻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좋은 강의를 통해 오랫동안 자신을 격려해준 장 전 총장과 시집도 가지않고 뒷바라지해준 언니(오순덕.48)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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