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봉 다큐‘맨 온 와이어’제임스 마시 감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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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74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에서 고공횡단 을 하는 필리프 프티, 프티의 퍼포먼스를 올려다보는 뉴욕 시민들. 프티는 이 경험을 담아 2008년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를 펴냈다. [영화사 진진 제공]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일.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결국 해내는 일.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벅찬 경험이다. 4일 개봉하는 ‘맨 온 와이어’는 그런 짜릿하고 드문 쾌감을 선사하는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 곡예사인 필리프 프티. 그는 1974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를 길이 61m, 무게 200㎏의 외줄에 의지해 건너는 세기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높이 410m가 넘는 쌍둥이 빌딩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프티와 그 친구들이 벌인 줄타기 퍼포먼스의 전 과정을 담은 ‘맨 온 와이어’는 지난해 아카데미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심사위원상 등 세계 27개 영화제를 휩쓸었다.

세계무역센터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현대문명의 충돌과 분열을 상징하는 비극적인 장소로 꼽힌다. 그런 곳을 희망과 도전의 무대로 새로 읽게 만든다는 점에서 ‘맨 온 와이어’는 탁월한 다큐멘터리다. 연출자 제임스 마시(47) 감독을 e-메일 인터뷰했다.

프티가 불가능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은 건 68년. 쌍둥이 빌딩 건설 소식이 실린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거리의 곡예사로 각광받았던 열일곱 소년은 외줄타기는 물론 마술·펜싱·체스 등 ‘잡기’라면 못 하는 게 없는 재주꾼이었다. 불법공연과 소매치기로 체포된 것만 500번이 넘을 정도였다. 마시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만난 ‘뉴욕의 전설’은 그런 개구쟁이다운 면모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집착이 강하고 아무도 못 말리는 괴짜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죠. 그런데 웬 걸요, 재치 있고 유쾌했고 열정이 넘쳤어요. 절 처음 만났을 때 제 주머니를 슬쩍 뒤지더군요. 어찌나 기술이 좋던지! 잡지를 말아서 사람 죽이는 법도 보여줬어요.”

30년이 훨씬 넘는 과거의 일을 다큐로 만드는 건 도전이었다. 아무리 당사자가 살아있다고는 해도. “(영화의 핵심이 될) 줄타기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하나도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사진과 관련자 인터뷰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죠.” 6년 간의 준비과정을 보여주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프티가 찍어놓은 비디오 덕분이었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모여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어떻게 준비해나갔는지가 생생히 담겨 있었죠. 활과 화살을 이용해 두 빌딩 사이에 줄을 연결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장면을 포함해서요. 이 비디오는 ‘맨 온 와이어’를 있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다큐에는 쌍둥이 빌딩 공사현장 장면도 등장한다. 프티가 어떻게 이 ‘거사’를 결심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화면이다. 이 자료는 테러 당시 유실됐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찾기 위해 숱한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뒤져야 했다.

‘맨 온 와이어’로 지난해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제임스 마시 감독. [영화사 진진 제공]

상상력과 연출력이 부족한 자료를 대신했다. 마시 감독은 ‘오션스 일레븐’류의 범죄드라마 형식을 빌려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했다. 영화 속 흑백 장면은 배우를 쓴 재연이다. 프티와 그 친구들은 기자를 사칭하는 등 200회의 사전답사를 하고, 헬리콥터를 띄워 항공촬영을 시도한다. “그 퍼포먼스는 불법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한 편의 범죄드라마였어요. 다만 주인공이 범죄자가 아니라 예술가이고 몽상가라는 점이 달랐을 뿐이죠.”

프티는 다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죽는 것도 아름다울 거다. 꿈을 이루려다 죽는 거니까.” 꿈을 위해 죽어도 좋다는 그의 메시지는 일상에 짓눌린 현대인에게 크나큰 해방감을 선사한다. 프티가 마천루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그 답답한 세상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감독도 동의했다. “‘불가능은 없다’는 그의 도전정신은 참으로 고귀하다”는 대답과 함께.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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