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자구책 못 세우고 자중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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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건설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스스로 산다' 는 원칙을 세웠으나 여의치 않은 가운데 자중지란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鄭회장이 5일 직접 주재한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과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만 참석할 정도로 계열사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고, 정부.채권단 및 가족들과 접촉해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원론적인 답변만 듣고 있다.

◇ 난감한 자구책 마련〓정부.채권단이 늦어도 8일까지는 시장이 납득할 만한 자구책을 요구해 왔으나 현대는 아직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현대는 채권단의 요구를 먼저 파악한 뒤 확실한 자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서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 관계자는 "정부.채권단이 추가로 요구하는 자구 방안의 골자는 오너의 사재 출자와 계열.관계사의 협조" 라며 "이는 현대건설을 살리기보다 감자(減資)등을 염두에 두고 있어 鄭회장과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사재 출자.경영권 박탈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자구 방안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지만 鄭회장이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과 정상영 KCC회장.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에게 도움을 청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며 "현대건설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현대아산 등)을 이용한 1천6백억원 규모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고 말했다.

◇ 정몽헌 회장 계열사마저 한발 빼〓정몽헌 회장 계열사인 현대전자의 박종섭 사장은 5일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현대전자는 이날 재무구조 및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시티그룹을 경영 자문역으로 선임하고, 중장기적인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전자가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를 도울 수 없고,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해 재무개선에 나서는 등 현대로부터 독립적으로 경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현대전자 관계자는 "전자 지분은 鄭회장이 1.7%, 중공업과 상선이 각각 9%로 현대측이 20%에 못미치고, 외국인 지분이 42%로 그룹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졌다" 며 "해외 금융기관을 창구로 경영과 재무를 투명하게 보여주기로 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현대건설에 대한 불안감이 현대전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전자는 부채 규모가 8조원이며, 이와 별도로 LG에 반도체부문 인수대금 중 8천억원을 아직 주지 않았다.

또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올 회사채가 1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반도체 D램가격이 하락해 당초 올해 예상했던 매출액 10조원을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시래.양선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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