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시장 헤집기]'차이메리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1호 33면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밀월 관계를 의미하는 ‘차이메리카(Chimerica)’. 이 신조어를 2년 전 처음 만들어 쓴 니알 퍼거슨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두 나라의 관계를 부부로 비유한다. 미국은 낭비벽 심한 부인, 중국은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다. 부인이 아무리 흥청망청 소비(재정적자)해도 성실한 남편이 땀 흘려 일해 그만큼 저축(미 국채 매입)을 하니 가계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부의 금슬이 좋을 때 얘기다. 이런 부부가 백년해로할 것을 기대하긴 힘들다. 퍼거슨 교수도 차이메리카가 결국 이혼할 운명의 부부라고 말한다.

차이메리카 부부 덕분에 지난 10여 년간 동네 사람들도 넉넉한 생활을 누렸다. 왕성했던 미국의 소비와 중국의 투자 혜택을 톡톡히 누린 예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나 차이메리카 10년은 바로 버블 형성의 역사였고, 그 버블은 2008년 터지고 말았다. 집안이 거덜나게 생겼으니 부부 싸움을 심하게 벌일 만했지만 양쪽은 합심해 사태를 수습했다. 퍼거슨 교수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 뉴욕의 한 강연에서 “차이메리카가 힘을 모을 것이며 이번 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수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퍼거슨 교수는 “이제 드디어 이혼할 때가 됐다. 차이메리카는 가급적 빨리 결별하라”고 독설을 퍼붓고 있다. 지난해 12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발표한 ‘차이메리카의 종언(The End of Chimerica)’이란 논문에서다. “한 고비를 넘긴 지금이 바로 글로벌 경제시스템을 정비할 적기다. 어영부영하면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과 버블이 다시 심해져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그의 경고다. 그가 주문한 이혼 서류는 바로 ‘위안화-달러 페그제(고정환율)’의 청산이다. 위안화 평가절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의 내수 시장이 커져 글로벌 소비 확대가 기대된다. 아울러 중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화를 무리하게 사들일 필요가 없어지고 미국의 적자재정과 과잉소비도 억제된다. 퍼거슨 교수는 “수출 주도로 경제 성장을 일군 독일과 일본이 과감하게 통화가치 절상을 수용한 뒤 글로벌 경제는 한 단계 더 번영을 구가했다”며 “중국이 이제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마침 미국 정부도 움직일 태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앞으로 2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며 5년 안에 수출을 두 배로 늘리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려면 위안화 평가절상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중국의 태도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한쪽에선 중국도 이제 움직일 때가 됐음을 깨닫고 연내에 가시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반면 최대한 시간을 끌며 몇 년 더 버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의 대응도 흥미롭다. 버블에 편승하는 단기 투자세력은 G2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기본에 충실한 투자자들은 마음 편하게 장기 투자할 호기가 오고 있다고 들떠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