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직원들"겨울 어찌 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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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

퇴출 기업 명단이 발표된 3일 오후 4시. 해당 기업체 임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앞날을 걱정했다.

우성건설 임직원들은 TV에서 회사 이름이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책상에 걸터 앉거나 복도에 모여 대책을 의논하는가 하면, 혼자서 말 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한 간부는 "1995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직원들이 박봉을 쪼개 자사주 사기 운동(30만주)까지 하며 고생을 참아왔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미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대한중석의 40대 간부는 "내년에 큰 아이가 대학에 가는데 교육비를 어떻게 댈지 걱정" 이라고 말했다.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떼' 를 생산해 온 서광은 98년 부도를 낸 뒤 7개 브랜드를 2개로 줄이고 직원을 2천9백명에서 40명으로 줄이는 등 피나는 자구노력을 해왔지만 결국 퇴출 대상에 끼고 말았다.

퇴출 낌새를 알아챈 삼성상용차 근로자 대표들은 발표가 나기 전인 이날 오전 대구 공장에서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으로 올라와 종업원 처리문제 등을 놓고 회사측과 협상을 벌였다.

한라자원 직원들은 "이제 올 것이 왔다" 는 표정이었다.

97년 12월 한라그룹 부도로 청산 절차에 들어가 2백10명이었던 직원이 세명뿐인 썰렁한 모습이었다.

광주의 광은파이낸스㈜ 직원들은 퇴출 일정 등을 알아보는 등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직원은 "지금까지 직원 고용문제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고 말했다.

신화건설 노조 김봉훈 사무국장은 "현재 직원이 6백80명인데 청산되면 남은 공사를 마무리하는 인력을 제외하고 3분의2 가량이 그만 둬야 한다" 면서 "외환위기 이후 3년 동안 밀린 상여금 1천7백50%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 씁쓰레해 했다.

전문가들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고용 유발 효과가 큰 건설 업종의 퇴출이 특히 많아 실업자가 크게 늘고 체감경기가 더욱 나빠질 것" 이라며 "이달 중 금융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등 연말까지 4대 부문 개혁이 집중돼 최대 3만~4만명의 실직자가 생길 것" 으로 예상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강제 퇴출 반대 시위를 벌였다.

김기원(경제학)방송통신대 교수는 "사회보장 제도 보완.고통분담 원칙 적용.부실 분담 노력 등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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