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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와이드] 나, 화려한 싱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화려한 싱글 - . 사회 통념을 거스르는 도전인가, 젊은이들만이 가진 욕구의 자연스런 귀결인가.

홀로 살아가면서도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분위기를 즐기는 싱글족이 사회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싱글족이 대부분인 1인 가구는 서울.경기.인천에서만 67만9천여가구. 전체의 12% 가량이다. 이렇다보니 이들을 겨냥한 산업이 생겨나고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

*** 그녀, 아이스크림 튀김을 먹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패션 리더' 들이 북적이는 거리 분위기에 걸맞게 노점상들도 앞서 간다. 최근 새로 선보인 메뉴는 아이스크림 튀김. 손가락만한 크기의 아이스크림에 튀김가루를 묻혀 순간적으로 튀겨낸 먹거리다.

스물아홉살의 싱글족 김연희(金姸希.여)씨는 얼마 전 이곳을 거닐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봤다.

그러면서 겉과 속이 다른 '튀김옷을 입은 아이스크림' 이 문득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불편하고 힘들 것이란 외부 시선의 껍질을 한꺼풀만 벗기면 달콤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시의 편리함과 서비스가 알찬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金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 속에서 놀이공원을 지었다 부수는' 테마파크 디자이너다. 대학에서 디자인 강의도 한다. 도시의 싱글족을 상징하는 능력과 이에 상응하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사이트 '솔로베이' 의 조사(6백55명 참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경제적 여유를 싱글족의 필수조건으로 꼽았다. 친구(16%).건강(8%).취미(7%)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원한 독신을 고집하진 않는다. 단지 지금은 일의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뿐이다.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어른들의 성화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지금의 나는 '젊은 어른' 이라고 생각해요. 컵에 70% 정도의 물이 찬 상태죠. 살면서 많을 것을 더 배우고 성숙해지면 그때쯤 좋은 사람도 나타나겠죠. "

그녀는 오전 6시30분쯤 일어나 헬스나 인도어 골프를 하고 회사로 향한다. 운전을 하며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일에 대한 욕심도 많다. "아직 상상력의 날개를 다 펴지 못했다" 는 그녀는 놀이기구 설치현장에서 인부들과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손님이 없는 밤시간에 공사를 하다 보면 한달에 절반 정도는 밤샘작업을 피할 수 없다.

야근 없는 날은 오후 7시쯤 퇴근해 인터넷에서 찾아낸 서울 강남 일대의 맛집을 누비며 여가를 즐긴다. 매사에 지나치지 않은 자신감과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金씨를 활기차게 한다.

*** '싱글철' 2호선 타고

서른살의 선물(先物)중개사 박민호(朴敏浩)씨는 지난 3월 서울 대방동에서 신림동으로 되돌아왔다.

신림동을 떠난지 8개월 만이다. 조용한 주택가 원룸은 여의도의 회사에서는 가까웠지만 갑갑했다. 일상적인 여가를 알차게 해주는 시설이나 장소가 없었다.

서울대 인근 신림동, 연세대 부근 신촌 등 대학가는 싱글들에겐 천국이다. 비디오방.PC방…. 혼자서 얼마든지 놀 수 있다.

싼 가격도 매력이다. 번듯한 원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월세 30만원 안팎이면 방을 구할 수 있다. 대학생활 동안 익숙해진 동네의 푸근함도 있다.

인접한 지하철2호선을 타면 홍대.강남역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한번에 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예 눌러앉거나 돌아온 친구들이 많다.

이에 비해 고급 원룸은 지하철2호선 삼성역~서초역 구간에 밀집해 있다. 역삼.선릉 역세권이 1급지다.

이처럼 전통적 싱글촌인 대학가와 신(新)싱글촌으로 부상한 삼성동~서초동 벨트는 모두 2호선을 따라 형성됐다. 그래서 '싱글철(鐵)' 로도 불린다.

원룸 전문 공인중개업소인 '포스트공인' 에 따르면 강남지역 12~14평 기준으로 전세는 5천5백만~6천만원. 최근에는 보증금 1천만원에 매월 80만~90만원을 내는 월세도 많다.

냉장고.세탁기.TV 등 집기가 놓여 있어 몸만 들어가면 되는 원룸도 등장했다. 보증금은 없는 대신 매달 1백50만원으로 좀 비싸다.

원룸 알선업체 '원룸텔' 관계자는 "홍익대.서울대 주변 원룸 전세가격이 강남권에 비해 1천만원 정도 싸다" 고 귀띔했다.

*** 반포동 파티의 날

지난달 28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메리어트 호텔의 카페 디모다. '클럽 프렌즈' (http://www.clubfriends.co.kr)의 파티가 있는 날이다. 핼러윈데이를 맞아 가위손.해적.귀신 복장을 한 회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석달 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이 모임을 알게 된 김연희씨도 파티의 회원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또래 전문직 종사자들이어서인지 금방 친구가 됐다.

1997년부터 6천여명의 '싱글족' 이 이 파티를 거쳐갔다. 회원제로 운영되고 회원의 평균 나이는 남성 30세, 여성 25세며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다.

연회비는 회원 등급에 따라 19만~49만원이며 한달에 서너번 파티를 연다. 이 클럽은 개인의 캐리어 관리까지 해주는 에이전시 역할도 한다.

또 다른 클럽 '파티즌' (http://www.partizen.co.kr)은 무료회원제로 매달 한번씩 테마가 있는 파티를 연다. 또 모일 때마다 특별한 춤을 단체로 추는 '클럽댄스' 에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싱글족들도 많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엘리피아' (02-766-2002)처럼 싱글족을 위한 회원제 카페도 있다. 재직증명서.최종학교 졸업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회원이 될 수 있다. 식사와 술을 함께 판다.

특히 인터넷 동호회가 활성화하면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어디서든지 쉽게 사귈 수 있어 싱글들에겐 더없는 위안이 되고 있다.

인터넷 동호회 업체인 '다음(http://www.daum.net)' 에는 싱글을 주제로 한 동호회가 69개나 개설돼 있다.

20대 싱글 만남의 장인 'e-카페' 의 회원수는 6백명이 넘는다. 이밖에 지난 8월 결성된 '30대 싱글모여라' 도 정모(정기모임)와 번개(비정기 모임)를 통해 싱글들 만의 공간을 꾸며가고 있다.

<취재팀>

전국부 : 정영진.김영훈.박지영 기자

사진부 : 김경빈.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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