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타일]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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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남산 기슭에 자리 잡은 디자이너 이광희(48)씨의 작업실은 오래된 가구와 책들이 가득하다.

고풍스러운 14~15세기풍 프랑스제 소파와 장식장, 18세기 영국식 책상, 그리고 방안 구석구석 숨어 있는 18~19세기 고서들이 처음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의외로 다가온다.

유행의 첨단에 있는 패션 디자이너의 작업실이 몇 백년전 물건들로 가득할 줄이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보여 달라는 주문에 이씨가 들고 나온 것 역시 1800년대에 출간된 4권짜리 '프랑스 복식사' 와 1900년부터 1910년 사이에 발행된 프랑스의 엽서 모음책이었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쇼핑을 별로 즐기지 않아요. 대신 유일하게 욕심내는 것이 있다면 책이에요. 외국 출장 길에는 꼭 패션에 관한 고서 등을 구해오는 데 그냥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실제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되곤 하죠. "

낡은 엽서책 속에 차곡차곡 꽂혀진 엽서들은 당시 프랑스의 여자와 남자, 어린이와 노인들의 의복과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멋진 일러스트레이션 북과 다름이 없다.

이 엽서들은 10여년 전 프랑스 고서점 주인 할머니가 몇장의 엽서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이씨를 보고 모아준 것들.

출장을 갈때마다 그 서점에 들러 할머니로부터 몇장씩 받은 것이 이제는 제법 두꺼운 책이 됐다.

이제 이 엽서책은 이씨가 가끔씩 들춰보면서 엽서 속의 사연들을 상상하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비밀 창고. 또 손으로 직접 그린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이 가득한 19세기 프랑스 복식사를 들춰보는 것은 이씨만의 즐거움이다.

1980년 '비스카운테스' 라는 작은 숍에서 출발한 이씨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오는 6일 '네오 페미니즘, 네오 클래식' 이라는 주제로 20주년 대규모 기념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올 가을 유난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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