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도둑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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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회 인프라 건설담당을 맡은 아프리카의 장관이 같은 일을 하는 아시아의 한 장관 집에 초대받았다. 집이 너무 호사스러워 물었다.

"당신 봉급으로 어떻게 이런 집에 살 수 있습니까. " 그러자 아시아 장관은 아프리카 장관을 창가로 불러냈다.

"저기 다리가 보이죠?" "보이는군요. " 그러자 아시아 장관은 말했다. "10%." 그 다리 건설비의 10%를 먹었다는 것이다.

*** 부패 온상 '연줄 자본주의'

1년 후 그 아시아 장관은 아프리카 장관 나라에 초청받아 그의 집에 초대됐다. 그의 집은 더욱 화려했다.

"아니 당신 월급으로 이런 집에 살 수 있습니까?" 그러자 아프리카 장관은 아시아 장관을 창가로 불렀다.

"저기 다리가 보입니까. " '아시아 장관이 '아무리 봐도 다리는 없었다. "다리라곤 안보이는데요. " 그러자 자신을 가리키며 아프리카장관이 말했다. "1백%. " 그는 다리 건설비를 통째 먹어버린 것이다.

이 얘기는 세계은행에서 떠돌아다니는 농담이라고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세계화에 관한 한 책이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부패한 정치를 '도둑정치(cleptocracy)' 라고 명명했다.

이 책은 완전 도둑정치(나이지리아)에서부터 합법적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부정부패가 너무 만연해 그것이 당연시되는 발아단계의 도둑정치(인도)까지 도둑정치를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다.

동구와 러시아 등 옛 공산국가들, 아시아의 여러 국가, 심지어 일본도 그런 사례에 포함돼 있다.

도둑정치는 그러면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각종 법규와 규제가 제대로 준수되게끔 감시.감독해야 할 정부 당국과 규제자들이 그 자신만은 이런 룰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믿는 데서부터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의 우리 사회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도둑정치와 비교해 썩 나을 바가 없다. 한 벤처기업인이 회사의 구멍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자기가 간여하고 있는 금융회사에서 불법대출을 받아낸다.

그것을 감독할 처지에 있는 자들은 그로부터 또는 그와 관련된 자로부터 채권이나 주식을 뇌물로 받는다.

뇌물로 받은 주식값이 떨어지면 손해는 그 회사가 보전해준다. 그 회사의 부실은 감독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것은 도덕적 해이의 수준이 아니다. 시스템 자체가 아예 부패해 있다. 아마도 이런 부정행위들은 경기가 나빠져 문제가 불거질 계제가 없었더라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유지됐을 것이다.

금융감독원 자체가 부패한 불량시스템이니 그것을 들출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과연 금융감독원만의 시스템불량으로 이뤄졌느냐는 것이다.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연루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예단할 수 없다. 관련 피의자들이 주장하듯 정치권의 핵심까지 직접 연루된 것인지는 모르되 지금까지의 인사패턴이라든지, 패거리 은폐 행태 등으로 미뤄볼 때 간접 연루책임까지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말하자면 부패시스템을 묵인하거나 불량 운행토록한 정치체제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또 이런 부패시스템의 잘못이 공무원이나 정치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개혁도 自淨도 아득

잘 나간다는 벤처의 귀신 같은 장사수완이 모두 공무원이나 정치권과 결탁 또는 그 비호 아래서 가능했다면 기업가정신은 어디에도 소용없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연줄을 만들고 연줄에 기름 치는 재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연줄 자본주의' 아래서 부패 시스템에 기름칠하는 비용은 바로 국민에게 전가되고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것이다.

이미 한빛은행 불법대출이나 신용보증기금 외압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우리 금융구조의 기본틀은 이런 '도둑정치적' 연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백억원이 부정대출돼도 쉬쉬하고, 백수십조의 공적자금이 멋대로 쓰여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모두 같은 부패시스템에 얽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기초가 이렇듯 썩고 부실한데 과연 자정(自淨)이 되겠는가.

이런 기관, 이런 체제로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겠는가. 공직자윤리법.정치자금법.부패방지법 등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사법기관마저 의심받는 판이니 믿을 데가 없다.

그렇게 개혁을 외쳤건만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전혀 나아지질 않고 있다. 우리는 도둑정치의 어떤 급수에 해당할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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