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서울~부산~제주도’ 코스 … 중국인 눈높이 못 따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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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중국 여성 관광객(가운데 두 명)이 서울의 한 백화점 1층 매장에서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쇼핑에 돈을 가장 많이 쓴다. [중앙포토]

중국인이 생각하는 한국 관광의 만족도는 주요 비교 대상국 중 ‘꼴찌’였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중국 현지에서 홍콩·유럽·호주·일본·한국·아세안 등 10개 국가·지역 여행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중국 관광소비자 마케팅 조사’ 결과다. 한국 관광의 종합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63점으로 일본은 물론 베트남·말레이시아보다 뒤졌다. ‘타인에게 추천할 의향’은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관광객이 늘어나는데 한국 이미지는 오히려 추락하는 꼴이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가이드·관광지·쇼핑센터 등 업계 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입니다. 여기에 비자 문제까지 겹치면서 중국 관광객을 쫓아내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겁니다.” 김현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의 진단이다. ‘이 순환구조를 끊지 않는다면 중국 관광객 유치는 요원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여행사를 보자. 중국 관광객을 맞도록 허용한 여행사(인바운드)는 100개다. 이 중 연간 1000명 이상의 여행객을 받는 업체는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열악한 중소업체라는 얘기다. 이들은 덤핑을 해서라도 관광객을 끌어와야 할 처지다. 관광객에게 억지 쇼핑을 시키고, 도심에서 두세 시간 떨어진 곳에 호텔을 잡아야 하는 연유다.

김 연구원은 “중국에서 한국행 관광객을 모집하는 아웃바운드 여행사들이 국내 여행사들을 상대로 덤핑 경쟁을 유도해 국내 여행사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영세 여행사에 대한 정부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광가이드(안내원)의 자질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가이드의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활동 중인 가이드 중 자격증 소지자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무자격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화교나 조선족 동포다. 이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설명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는 9월 자격자 의무 고용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성이 적다는 지적이다. 자격증 소지자는 2600명에 불과하다. 이 중 실제 가이드로 뛰는 사람은 100명 남짓이란 것이 업계 추산이다. 이들이 한 해 50만 명에 달하는 단체 관광객을 어떻게 맞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무량 화방여행 사장은 “기존 가이드들에게 교육을 시키거나, 자격증 시험의 문턱을 낮춰서라도 가이드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딴 사람이 정작 가이드 활동을 포기하는 업계의 열악한 환경도 문제”라는 이야기도 했다.


중국 관광객들은 상품이 진부하다고 불평한다. 맞는 말이다. 서울∼부산∼제주도 코스는 10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중국 관광객들의 수준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만큼 빠르게 변하는데 우리 관광상품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그대로인 것이다. 중국인에 대한 우리 인식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여행사 사장들은 ‘가격 책정(pricing)’에 근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에서 한국 관광상품 가격은 동일한 품질이라면 일본보다 약 1000위안(약 17만원) 싸고, 동남아보다 1000위안 정도 비싸다. 일본과 동남아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다. 가격을 높이면 일본에 고객을 빼앗기는 구조다. 우리나라 국가 이미지의 수준이 그렇다. 저가상품→덤핑 경쟁→열악한 서비스→이미지 추락→저가상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악순환 구조를 끊기 위해 우리가 먼저 ‘관광 한국’의 격(格)을 높여야 한다. 김현주 연구원은 “중국인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선입견이 중국 관광객 유치의 가장 근본적 걸림돌이다. 중국 관광객의 수준이 높아진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개별 자유관광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네댓 명 단위의 자유여행객을 많이 모집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소비성향도 강해 관광수입 부가가치가 높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유럽에 처음으로 해외여행 붐이 일었던 1960, 70년대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경제와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체 관광객 수는 줄고 개별 자유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 해 약 2만5000명의 중국 관광객을 맞는 화방여행이 최근 판매한 ‘펀 스키(fun ski)’ 상품이 개별여행의 한 사례다. 이 회사는 최근 광저우 소비자를 상대로 강원도 스키 여행 상품을 기획했다. 한무량 사장은 “7000위안(약 119만원)으로 싸지 않은 편인데도 금세 매진됐다. 상품 내용이 좋으면 가격은 문제가 덜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전체 중국의 해외 여행객(홍콩·마카오 제외) 중 한국을 찾는 여행객 비율은 약 9%다. 한국이 이웃 나라임을 감안할 때 이 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이참 사장의 생각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중국은 이제 본격적인 해외관광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잘만 준비하면 중국인 관광객은 매력적인 ‘달러 박스’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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