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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조종사 몰아붙이기 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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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3일 오전 대한항공 조종사 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남편이 대한항공 입사 21년차 기장이라고 밝혔다.

"조종사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자인데도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한다는 회사측의 일방적인 주장 때문에 조종사들이 돈만 밝히는 사람들로 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월급명세서와 연간소득 명세서를 보내왔다.

명세서는 지난 한해 동안 연봉으로 6천4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다. 이 부인은 "대기업에서 20년을 재직한 부장.이사에게 각종 판공비가 지급되는 것을 감안하면 남편이 받는 액수가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으냐" 고 물었다.

대한항공측은 지난 21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17년차 기장이 매월 1천만원 이상을 받는다고 했다. 사측이 계산한 급여에는 보험료와 학자금 등을 포함한 액수였다.

이를 제시하며 "조종사들이 비행수당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비행수당이 과세대상이 아니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조종사들이 세금까지 피하려 한다는 인상을 풍긴 것이다.

연봉 계산법에 문제가 제기되자 회사측은 뒤늦게 "예로 제시한 조종사 연봉은 극단적인 케이스였다" 고 시인했다.

사실 조종사들의 파업이 시작되자 회사측은 "돈 몇푼 더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조종사 노조 때문에 발생했다" 는 논리를 폈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엄청난 고소득자라는 사실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다.

물론 승무원이나 지상근무자들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조종사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종사들의 주장을 돈 문제로만 분칠한 채 회사측의 잘못은 덮어버리는 자세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수년간 괌사고 등 연이은 대형사고를 겪었다. 그때마다 안전 우선의 정책을 펴겠노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으로, 아직도 조종사 1인당 월 1백시간 이상 운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으로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게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비행수당을 들어 조종사들의 주장을 억지라고 몰아붙이기에 앞서 회사측은 조종사들이 제기하는 안전운항을 해치는 관습적.제도적 측면의 항의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인정할 건 인정하는 자세가 아쉽다.

전진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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