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 26000 몰라 수출 막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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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 2013년 해외 프로젝트가 많은 국내 대기업 A사. 어느 날 해외 바이어가 이 회사 담당자에게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인 ‘ISO 26000’ 인증을 받았는지 자료를 요구했다. A사 관계자는 “ISO 26000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지만 회사 차원에서 인증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결국 해외 바이어는 A사를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으로 판단하고 조금씩 거래를 줄여 나갔다.

#2. 2015년 글로벌 전자업계는 ISO 26000을 준수하는 업체와 거래하겠다고 선언했다. ISO 26000 준수 움직임은 전자업계에 이어 글로벌 제조업체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IS 26000 인증을 받지 못한 국내 전자부품업체 B사의 관계자는 “2010년 ISO 관련 외신 보도를 보고도 남의 일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5년 만에 수출 길이 막혔다”고 말했다.

앞으로 3~5년 안에 우리 기업들에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다. 국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59%는 연내 확정을 앞두고 있는 ISO 26000에 대해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이 26일 펴낸 ‘신무역장벽 ISO 26000에 대한 기업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ISO 26000에 대해 ‘대응하지 않고 경쟁기업 동향만 파악하고 있다’는 기업이 36.1%에 달했다. 21.3%는 ‘대응하지 않고 있다’, 1.6%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하는 등 기업의 59%는 별다른 대응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책을 완전히 갖췄다’고 응답한 기업은 4.9%, ‘어느 정도 대응책을 갖추고 있다’고 밝힌 기업은 36.1%였다. 최광림 지속가능경영원 지속가능전략팀장은 “ISO 26000이 앞으로 보이지 않는 관세 장벽으로 우리 기업의 수출 길을 막을 수도 있다”며 “적용 대상이 기업뿐 아니라 정부·공공기관·연구기관·시민단체·노동계 등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간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예전 사례로 봤을 때 유럽연합(EU) 국가가 앞장서서 ISO 26000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의 대응 수준이 낮은 이유로는 ‘구체적인 추진 방법을 몰라서’라는 응답이 27.8%로 가장 많았다. ‘경영층의 관심이 적어서’(16.7%),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서’(16.7%), ‘효과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5.6%), ‘전담 조직이 없어서’(5.6%) 등이 뒤를 이었다.

강병철 기자

◆ISO 26000=기업·정부·시민단체 등 모든 이해관계 조직을 대상으로 인권·노동·여성·소비자·지배구조·공정거래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책임 준수 여부를 인증하는 기준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이르면 올 10월 기준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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