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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야쿠자의 검은 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의 조직폭력배를 일컫는 '야쿠자' 라는 말은 도박용어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산마이 가루타' 라는 일종의 골패노름은 석장의 카드로 승부를 내는데, 이때 8, 9, 3이 나오면 합이 20으로 최악의 패가 된다.

세 숫자에서 발음을 따온 말이 야쿠자다. 사전적으로 '아무 쓸모 없는 것, 방탕한 놈' 이라는 뜻이다.

야쿠자의 역사는 어원과 마찬가지로 도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박판을 차리고, 단속이 오나 망 봐주고, 행패 부리는 고객은 혼뜨검을 내고, 돈을 빌려주고 받아내는 일이 주업무였다.

멀게는 아득한 7세기께를 야쿠자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부랑인.노점상.유흥가 주먹들도 차츰 야쿠자 대열에 끼어들었고,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 중기에 본격적으로 조직화하면서 번성했다.

야쿠자는 특히 근대 제국주의 일본정부가 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을 탄압하는 데도 동원됐다. 도박판의 기생충에 불과하던 깡패들이 정계.군부를 등에 업고 하루 아침에 '대일본 국쇄회' 같은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날뛰었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국쇄대중당' 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중국에 아편을 유입시키는 등 아시아 침략에 앞장섰다. 야쿠자와 우익정치인의 유착관계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패전 후에도 야쿠자는 명맥을 이어갔다. '인의(仁義) 없는 투쟁' 시리즈 같은 야쿠자 영화는 턱없이 미화하긴 했지만 전후 혼란기 야쿠자 세계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일본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부터는 이른바 '경제 야쿠자' 가 등장했다. 여전히 폭력을 기본으로 하되 겉으로는 그럴 듯한 회사 이름을 내세워 총회꾼이나 공사하청 개입.빚 해결사 등 '사업' 에 주력한 것이다.

1992년 일본정부가 '폭력단 부당행위방지법' 으로 야쿠자 세계에 철퇴를 가하면서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 전국적으로 수백 개 조직이 암약하고 있다.

야쿠자 조직 중 야마구치(山口)파가 가장 크다고 한다. 수년 전 일본경찰 추계로는 조직원이 무려 3만5천여명이었다.

한 내국인이 야마구치파 조직원인 재일동포를 통해 31억원의 '야쿠자 자금' 을 국내에 들여와 주식을 구입하고 폭력까지 행사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영화 '넘버3' 에 나오는 국내폭력단과 야쿠자의 '상담(商談)' 장면이 상상만은 아닌 것 같아 영 입맛이 쓰다. 어디 들여올 돈이 없어 야쿠자의 검은 돈까지 들여오나.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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