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주인되자] 1.아파트내 동물 기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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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 사는 사회는 아름답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는 모두를 편하고 행복하게 한다.

민주사회의 토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너와 나만 있을 뿐, 진정한 '우리' 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해체되면 모두 무질서와 혼돈의 노예가 된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모두가 모두를 배려하는 나눔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에게 비로소 미래가 있다.

1994년부터 자원봉사 캠페인을 펼쳐온 중앙일보는 '나눔' 에 공동체의 '질서' 를 더해 '시민이 주인되자' 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함께 나누며, 지킬 것은 지키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다. 공동체는 남이나 관청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며 '깨인 시민' 각자가 조성해 가야 한다.

중앙일보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1년반여 앞으로 다가온 2002년 월드컵. 우리도 선진 시민으로 도약하기 위해, 살 맛 나는 사회를 일구기 위해 사회 곳곳의 잘못된 문화를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제1부로 도시민들의 공동생활 구역인 아파트부터 찾아간다.

이구아나(파충류).일본 원숭이.햄스터(쥐의 일종).왕관앵무.카멜레온….

최근 다양화하고 있는 애완동물들이다. 기르는 사람이야 귀엽겠지만 혐오.두려움과 불편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지난달 반상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 H아파트 7층. 10여명의 이웃이 모여 담소하는 사이로 빨간 팬티를 입은 원숭이 두 마리가 '끽끽' 대며 뛰어들었다.

李연희(30.여)씨 등 놀란 참석자들이 이리저리 피하면서 커피잔이 엎질러지는 등 가벼운 소동이 일었다.

빌라에 사는 張영기(44.서울 대치동)씨는 개 짖는 소리에 종종 잠을 설친다. 윗집에서 세 마리나 키워 심야에 교대로 짖어대는 것이다. 개 털에 알레르기도 있어 겹고생이다. 악취도 문제다.

최근 부쩍 늘어난 이구아나로 이웃간 분쟁도 생겼다. 이구아나는 매일 30분씩 일광욕을 시켜줘야 하는데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옆 집으로 기어들어가곤 한다.

해오름 동물병원 李오용(33.여.서울 대흥동)수의사는 "이구아나를 키우던 어떤 손님은 이웃의 항의에 결국 이사했다" 고 말했다.

개.고양이 외에 이처럼 특이한 애완동물만도 전국적으로 30여만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애완동물 키우기는 이제 외국처럼 시민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제는 이웃에 대한 배려다. 서울 송파구 A아파트의 오후. 몇몇 주민이 개를 끌고 나와 산책시키다 화단에 들어간다. 배변.배뇨 시간이다. 경비원 金모(62)씨는 "화단에서 개 분뇨를 치우는 것이 오후의 일과" 라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 공원에는 '개 배설물 경고' 표지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경우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들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닌다. 배설물을 담아 가기 위해서다. 아파트는 '노 펫(No Pet)' 이 대부분이며 임대 계약서에 포함돼 있다.

애완동물의 천국인 프랑스지만 불도그 등 맹견류는 광견병 예방접종 증명을 첨부해 관할 시청에 신고해야 한다.

나들이할 때는 입마개를 씌우고 줄을 달아야 한다. 위반하면 해당 애완동물을 안락사시킨다. 다른 사람의 피해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다. 동물이 남을 물면 주인과 격리시킨다.

일본도 뱀.악어까지 집에서 기르지만 이로 인한 시비는 거의 없다. 이웃에 폐가 없도록 극도로 자제한다. 공원에는 애완견 전용 화장실도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 방배동 A빌라에서는 몇달 전부터 애완동물 신고제를 실시하고 있다. 키우는 동물의 종류와 숫자를 관리사무소에 알리고 '애완동물 기르는 집' 이란 스티커를 문에 붙인다. 당연히 조심스럽게 동물을 관리하게 된다.

시민단체 주거문화21 김성대(金成大)기획실장은 "아파트는 공동 주거 공간이라는 점을 배려해야 하고 애완동물 관리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도 갖춰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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