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장 이문제] 건설플랜트노조 파업 장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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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 800여명이 지난 6일 오후 석유화학공단 SK공장 앞 도로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연합]

울산이 건설플랜트노조 파업으로 50여일째 몸살을 앓고 있다. SK울산공장 프로판가스 분리탑(높이 68m)위에서는 노조원 3명이 8일째 농성중이다. 석유화학공단과 시내 주요 도로에서는 화염병.각목 등을 휘두르는 노조원과 경찰이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노조원에게 한때 점거당했던 시청 민원실은 경찰에 겹겹이 에워싸여 두달이 가깝도록 민원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울산시 등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시민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업체들 전전긍긍=노조원들이 동료 근로자와 충돌하는 등 작업을 방해하자 석유화학업체들은 공장 시설물 정기보수에 차질을 빚어 안전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있다.

지역 기업체 공장장 모임인 울산시공장장협의회는 지난 6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나 노력은 제쳐두고, 모든 자원과 시간을 공장 보안에만 집중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며 "시민의 안전을 볼로로 하는 과격 시위.농성 중단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노조가 고용관계가 없는 발주사를 압박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200여개 발주사와 1300여개의 건설전문업체가 제각기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른데 몇몇 발주사가 노조와 임단협을 일괄 조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협상상대 애매=파업 52일이 8일 현재까지도 누가 누구를 상대로 협상을 해야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SK.S오일 등 제조업체(발주사)의 공장 신.증축이나 공장 보수 공사를 해주는 전문건설업체(사용자)에 고용된 일용직들로 구성돼 있다. 공사에 따라 배관.용접.기계 등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고용되고 일이 끝나면 고용관계도 끝난다.

울산지역에는 1만2000여명의 근로자들이 1300여개 전문건설업체를 옮겨다니며 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800여명이 건설플랜트노조에 가입돼 있다.

이 때문에 동부.국제플랜트 등 사측은 "노조원이 우리 회사 근로자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며 협상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울산노동사무소가 궁여지책으로 '파업 시작일 전후 2주일간 고용계약이 되어 있으면 단체협상을 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적용한 결과 노조원 가운데 20여명만 12개 업체와 고용관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교섭도중이라도 공사가 끝나 고용관계가 해지되면 사용자측은 교섭의무가 없어진다는게 노동전문가의 설명이다.

◆ 쟁점.전망=근로조건이나 임금인상률 등 협상의 내용보다 단체교섭의 성사 여부가 더 큰 쟁점이다.

사측은 "부두노동자처럼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 건설플랜트 노조원들의 특성상 단체 교섭을 해야하는 노사관계가 성립되면 노조가 노무공급권을 갖게 돼 항만노조 같은 폐해가 나타난다"며 "이미 여수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울산시나 발주 업체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노조측은 "하루 8시간 근무(현재 9시간), 주월차 수당 지급, 탈의실 설치 등 법으로 보장된 것을 지켜달라는 것일뿐 노무공급권은 말도 꺼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노사는 파업 42일만인 지난달 30일 울산노동사무소의 주선으로 첫 상견례를 가졌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없다.

항만노조처럼 집단협상을 하겠다는 노측과 개별협상을 요구하는 사측이 서로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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