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보증이 왜 필요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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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요즘 기업들이 돈 구하기가 힘들다며 야단이지요.그래서 정부가 운영하는 신용보증기금이란 공공기관은 올해 기업에게 하려던 보증 규모를 20조원에서 21조5천억원으로 늘리기로 했어요.기술신용보증기금도 이번 4분기 중 중소·벤처기업에 4조원 이상의 보증을 해주기로 했지요.기업들이 여기서 발행한 보증서를 갖고 은행에 가면 돈꾸기가 쉽고 그만큼 자금난을 덜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 경제생활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보증은 돈을 빌려준 은행에서 행여 나중에 떼일까 염려해 요구하게 됐어요.

신용보증기금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해 보증 규모가 무려 4백조원에 이른답니다.

보증이라고 하면 당장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진 뒤 망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실직자가 2백만명에 육박하면서 봉급생활자든 기업체든 돈줄이 막혀 야단이었지요.

더구나 친지·친구·직장 동료가 돈을 꾸는 데 연대보증을 섰다가 그들의 돈을 대신 갚게 돼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도 있었어요.파산은 기업에나 쓰는 말인줄 알았는데 ‘개인파산’이란 말도 유행했지요.

농촌에선 한마을에서 몇집이 연대보증을 피해 밤에 도망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보증 제도에 대한 원성도 높아졌지요.어떤 학자는 조선시대 반역자의 가족·후손까지 못살게 굴었던 연좌제에 비유해 ‘경제적 연좌제’라면서 보증 제도를 없애라고 목청을 높였지요.

하지만 보증은 우리 경제생활의 여러 제도와 관행이 그렇듯 나름대로 탄생·존속할만한 이유가 있답니다.보증을 서는 관행은 이미 기원전 17세기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됐고,우리나라도 조선시대의 보증 관행이 역사책에 기록돼 있어요.다만 건국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맞아 보증 제도의 부정적인 면이 한꺼번에 드러났던 것이지요.

◇보증은 왜 필요한가=은행입장에선 꾼 돈을 제때 갚을만한 사람을 신용이 있다고 합니다.재산이 넉넉하고 직장이 확실하다고 판단하면 다른 것 더 따지지 않고 ‘신용대출’을 해줍니다.신용이 좋지 않으면 집·땅 같은 부동산이나 귀중품 또는 주식·채권 같은 유가증권을 맡기고 ‘담보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용도,담보도 없는 사람이 급한 돈 쓸 때 기대는 게 바로 ‘보증대출’입니다.다른 사람을 담보로 돈을 꾼다는 점에서 보증은 ‘인적 담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보증대출은 봉급생활자 같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받습니다.기업체가 친분이 있는 기업이나 사람을 보증 세우고 돈을 꾸는 것이지요.

보증은 돈을 꾸는 데만 필요한 게 아니예요.가령 자동차를 할부(금융)로 사거나 휴대폰에 가입할 때도 회사측은 혹시 할부금이나 요금을 내지 못할까봐 보증을 세우라고 요구합니다.이 경우 전문회사가 일정 금액을 받고 대신 보증을 서주기도 합니다.

회사에 취직할 때도 그전에는 재산이 많거나 신분이 확실한 친구와 친지가 보증을 섰지만 이제는 전문회사가 대신 재정보증을 섭니다.

건설회사가 공사할 때 계약을 지키지 못하거나 하자가 생길 때 피해금액을 대신 물어주는 것도 보증의 기능이지요.

이처럼 보증은 우리가 경제생활을 원활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신용을 갖추려면 시간이 걸리고 또 부득이 신용을 지키지 못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보증 전문회사도 있어=보증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해 주는 회사들이 생겼습니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증 전문회사로 서울보증보험·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을 꼽을 수 있지요.지역신용보증조합(지방 특화산업)과 전문건설공제조합(전문건설업)·주택보증공사(주택건설)도 있어요.

서울보증보험은 아까 예로 든 자동차 할부금융 보증이나 취업 보증 이외에도 회사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해주지만 요즘엔 그리 활발하지 않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중소·벤처기업이 은행에 가서 돈을 꾸거나 어음을 할인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일을 주로 합니다.이렇게 보증한 금액이 기술신용보증기금까지 합해 지난해 모두 30조원이나 됐습니다.

◇보증 남발은 곤란=보증이 급한 돈을 구하는데 필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여기에 너무 의존하면 곤란합니다.‘잘쓰면 약,못쓰면 독’이라는 금언이 딱 들어맞는 경우지요.

안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준 연대보증 때문에 집과 월급을 차압 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기업도 마찬가지에요.과거 재벌의 계열사들이 서로 상대방이 지는 빚에 보증을 서는 상호 지급보증이 문제가 됐답니다.그룹 안에서 그래도 여유가 있는 회사가 형편이 어려운 회사의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을 도우려고 보증을 서는 일이 많았는데 외환위기 이후 그룹 전체가 함께 부실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요.

정부는 그래서 보증의 남발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만들고 있어요. 30대 재벌(대규모기업집단)의 상호 지급보증을 규제하고 있고,개인의 부문별한 보증을 막기 위해 보증총액한도제라는 것을 만들어 한사람이 보증을 설 수 있는 한도를 정하기로 했지요.

또 은행들이 돈을 꾸려는 기업의 살림구조나 장사 전망 등을 꼼꼼이 따지지 않고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서만 믿고 돈을 꿔주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할 때 은행과 보증기관이 나눠서 책임을 지는 부분보증제도를 지난해 4월부터 시행하고 있어요.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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