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2001년 2단계 외환자유화…정부 대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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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는 내년 1월의 전면 외환자유화 시행 전부터 자금유출 현상이 확산되자 의아해하고 있다.

내년 초면 개인 송금한도가 없어지는데, 굳이 지금 한도를 어겨가며 자금을 유출시킬 이유가 없다고 그동안 판단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최근의 자금 유출에 대해선 원인이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재정경제부는 일단 "경제회복으로 경제규모가 커지고 조기유학 등 송금수요가 늘었기 때문" 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올 1~7월 증여성 송금규모(21억8천만달러)는 외환위기 전인 1997년 같은 기간(17억6천만달러)보다 많아 그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경제규모가 커지는 게 이유라면 국내로 들어오는 돈도 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증여성 송금 유입은 24억6천만달러로 지난해(23억9천만달러)수준에서 제자리 걸음이다.

◇ 내년이 더 걱정=내년 2단계 자유화로 개인 송금한도가 모두 풀린다. 금융계는 이때 일시적 자금유출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동포들이 그동안 한도에 걸려 가져가지 못한 예금에다 내국인이 해외에 분산해 놓고자 하는 자금, 유학생.해외 단기체재자의 정착비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것.

물론 올해 말, 내년 초의 경제상황이 가장 큰 변수다. 재경부 관계자는 "경제상황이 좋으면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고 전망했다.

◇ 해외 유출 어떻게 막나=정부는 내년부터 의심가는 금융거래 정보를 관리하는 금융정보분석실(FIU)제도를 운영한다.

FIU는 검찰청.국세청.관세청.금감원 등의 전문인력이 배치된 조직. 금융기관 직원에게 범죄혐의가 있어 보이는 금융거래를 FIU에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할 계획이다.

김규복 FIU기획단장은 "보고대상 혐의거래는 가.차명 계좌로 의심가는 거래, 단기간 거액이 빈번하게 입출금된 경우, 조세회피 가능지역과의 잦은 거래 등" 이라고 밝혔다.

국세청 통보도 계속된다. 재경부 김용덕 국제금융국장은 "내년에 송금한도가 없어져도 1인당 1만달러를 넘는 송금은 지금처럼 국세청에 통보해 계속 감시할 것" 이라고 말했다.

자금출처를 대지 못하면 세금을 물리겠다는 뜻이다. 미국도 1만달러 이상 빠져나갈 때 국세청에 통보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책으로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불법 송금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4월 이후 국세청이 1만달러 이상 송금자를 조사해 세금을 매긴 적은 없다.

또 정부대책이 불법자금의 유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다. 출처 증빙을 마친 합법 자금이 줄줄이 나갈 경우에 대한 대책이 마땅치 않다.

◇ 외환보유액 늘리고, 단기외채 줄여야=대외경제정책연구원 왕윤종 박사는 "2단계 자유화가 되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외환시장이 가장 많이 개방된 국가에 포함된다" 며 "그만큼 자금 유출입 규모가 커지면서 환율과 금리가 불안해질 수 있어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늘려 환위험 관리에 나서야 한다" 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정희식 연구위원은 "2단계 자유화로 국제 투기자금의 공격가능성이 커지고, 해외여행이나 증여성 송금이 늘면서 국제수지가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며 "현재 30%를 넘는 만기 1년미만 단기외채의 비중을 줄여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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