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위기의 버냉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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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의 벤 버냉키(사진) 의장. 그에겐 ‘경제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요즘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연임안을 인준해야 하는 미국 상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연임돼도 지도력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버냉키의 4년 임기는 이달 31일 끝난다.

24일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인 바버라 박서와 러스 파인골드가 버냉키 연임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버냉키 의장이 나라 경제를 위기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미국의 월간지 글로벌 파이낸스의 각국 중앙은행장 평가에서 그는 ‘C’등급을 받았다. 2008년엔 ‘C-’였다. NYT는 “두 의원의 반대 의사 표명은 의회에서 버냉키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버냉키로선 속이 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표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미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연임 지지를 밝힌 의원은 26명에 불과하다. 15명은 반대, 나머지 59명은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다. 애초 인준 투표는 지난 주말로 예정돼 있었으나 표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미뤄졌다. 고강도 금융규제안으로 금융계에 반(反)오바마 정서가 확산된 것도 부담이다.

반대 여론이 고개를 들자 버냉키를 구하기 위한 지원 사격도 부쩍 늘었다.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버냉키는 연준 의장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상원 금융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도드(민주당)는 “시장에 최악의 신호를 보내려면 인준안을 거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요즘 미국 금융계의 최대 화두가 은행의 ‘대마불사(大馬不死)’인데 버냉키도 대마불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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