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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월스트리트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오바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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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미국이 금융개혁을 위한 마지막 칼을 빼들었다. 이제 더 이상 나올 카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은행 영업과 거래를 직접 제한ㆍ금지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금융기관 위험투자 규제방안’에 따르면 은행은 위험한 거래를 할 수 없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보유하거나 투자할 수 없도록 했다. 고객 돈이 아닌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것도 금지한다. 심지어 은행은 덩치도 맘대로 키울 수 없다. 예금에 시장점유율 상한선을 둬 일정 수준 이상 못 받도록 한다.

그동안 내놓았던 월가 개혁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는 감독 강화와 경영진의 보수 제한 정도였다. 열흘 전 내놓은 것도 은행에 금융위기 책임을 물어 부담금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으로도 월가는 거세게 반발했고 증시는 폭락하는 등 파장이 대단했다. 이번에는 이보다 훨씬 강도가 센 걸 발표했으니 영향은 엄청날 게 분명하다.

벌써부터 ‘현대판 글래스 스티걸법(Glass-Stegall Act)’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1933년 제정된 법이 부활했다는 의미다. 글래스 스티걸법도 1930년대 대공황의 산물이었다. 거대 금융그룹들이 붕괴하면서 대공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은행들이 증권업무를 겸업하면서 거대해졌기 때문에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키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숱한 논란 끝에 99년 폐지됐고, 상업은행들은 증권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이 바람에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파생금융상품에 왕창 코가 꿰여 구제금융지원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오바마가 취임 후 줄기차게 금융개혁을 외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수익성만 추구한 대형 금융사가 위기의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상업은행이 위험한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규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월가의 도덕적 해이도 한 이유다.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사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면서 일반 국민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월스트리트(금융가)를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의 하위산업쯤으로 인식하는 민주당 철학도 한 몫 거들었다.

오바마의 결심은 대단하다. “저항하는 세력이 싸우길 원한다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할 정도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월가의 반발도 문제지만 국제 공조가 가능할지가 더 문제다. 미국만 규제하면 영국이나 독일 등의 대형 금융사만 이익을 본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압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이번 주의 다보스 포럼에서 시작될 것이다. 올해 열리는 두 차례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느냐에 한국 금융의 선진화가 달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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