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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은 왜 미사일 후퇴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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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한간의 정상회담과 관계개선에 이어 북한과 미국간에도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오랜 적대관계가 종식될 모양이다.

북한의 조명록(趙明祿)특사가 미국을 방문할 때 "조.미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 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가지고 갔던 것이 전격적인 북.미관계 발전의 시동열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북한의 태도로 볼 때 매우 급속한 사태진전이다. 대남정책에서의 근본적인 정책전환과 더불어 대미정책에 있어서도 급격한 태도변화를 한 북한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경제제재 완화 필요성 절실

북.미간의 최대 현안은 단연 북한의 미사일문제였고 미국이 북한의 제안에 적극 호응한 것을 고려한다면 趙특사가 가지고 간 金위원장의 친서에 미사일문제에 있어 미국에 매우 만족스런 해법을 제시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 해법이란 웬디 셔먼 미 대북정책조정관이 조명록과 클린턴의 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金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안한 '인공위성 발사 지원시 미사일개발 중단 용의' 문제도 논의했음을 밝힌 데서 그 답이 드러났다.

문제는 체제생존권과 자주권의 최후의 보루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알려진 미사일을 북한이 왜 후퇴하고 태도를 바꾸었느냐 하는 의문이다.

일차적으로 페리 프로세스로 알려진 미국의 대북정책에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페리보고서의 핵심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중단 및 개발중단에 대해 물질적 보상은 하지 않으며 단지 북한이 스스로 포기할 경우 경제제재 완화와 관계개선을 해줄 수 있다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미사일을 협상카드로 해 경제지원과 체제보장까지 얻어내겠다던 북한으로서는 기존의 전략으론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별로 없다는 데서 매우 고심하고 있었다.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가 주효한 셈이다.

*** 내부체제 함께 변해야 성과

둘째로 더욱 중요한 요인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지난 10년간의 생존전략이 실패로 끝났다는 북한의 자체평가 결과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을 전면 수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은 대내단속은 강화하면서 일본과의 수교와 그로부터 받을 배상금,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건설로 경제회생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1992년 핵문제가 돌출하면서 일본과의 수교가 좌절되고 미국과 핵문제.미사일문제 협상에 전념하면서 10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군사적 위협을 협상카드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도 얻고 관계개선도 도모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나진.선봉지대에 70억달러 외자유치 목표에 실제투자액은 1%정도에 불과한 8천만달러에 불과하다.

그동안 경제는 10년 연속 침체하고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태도를 바꾼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10년간의 공을 들였으나 실패한 것에 비하면 금강산 관광사업에서는 쉽게 성공하고 외화도 많이 벌었던 것을 고려할 때 개성공단 사업에서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대안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사업에서도 금강산 개발처럼 북한은 한푼도 투자하지 않고 거액의 임대료와 노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남한도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수출품을 생산함으로써 외화를 벌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 배경의 일단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미국의 지원이 절대로 필요하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수출품은 북한 원산지 상품이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 팔기 위해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와 국교정상화가 필요하다.

趙특사가 미국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미국의 협조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나면 다음은 일본과의 수교협상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와 더불어 사는 전략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내부체제의 변화가 있을 때 대외정책 변화의 효과는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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