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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먼삭스 ‘직격탄’… 유럽은행들 반사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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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은행 살리기에 납세자가 볼모가 되는 일이 다시 생겨선 안 된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나는 이제 오바마를 ‘오 백워드(backward·과거 회귀)’라고 부를 것이다.”(칩 핸런 델타글로벌어드바이저스 사장)

전쟁이 시작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월스트리트 사이에서다. 한쪽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태세고, 다른 쪽은 계급장 떼고 달려들 기세다.

하지만 둘 다 한편으론 초조하다. 정부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 당혹스럽고, 월가는 규제가 몰고 올 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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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변동 예고=규제안은 자기자본 투자(proprietary trading)를 금지한 것이 핵심이다. 또 대형 금융사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소유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은행 예금에 대해선 일반적인 독과점 규제보다 더 강한 시장점유율 상한선을 적용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정 은행의 부채가 지나치게 증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도 강화된다. 이 같은 규제로 인해 미국 대형 은행 가운데 골드먼삭스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규제안의 핵심은 자기자본 투자 제한인데 골드먼삭스는 이런 투자가 은행 매출의 10%가 넘는다. 지난해는 50억 달러(약 5조7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골드먼삭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문제 삼았던 보너스 지급액을 줄이겠다고 21일 밝혔지만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너무 늦었다”고 평했다. 이 회사 주가는 21일(현지시간) 4% 내렸다. 모건스탠리도 자기자본 투자 비중이 10% 이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모건스탠리·JP모건체이스·씨티그룹의 주가도 이날 4~6% 동반 하락했다.

반사 이익은 유럽 은행들이 누릴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HSBC, 독일의 도이체방크, 스위스의 UBS 등이다. 중남미를 발판으로 급성장한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은 미국의 앞마당을 더 휘저을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내부 논의 과정에서 규제안에 대해 "은행의 규모와 비즈니스를 제한하는 것이 미국 금융업의 대외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은행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경쟁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헌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추가로 규제를 늘릴 만한 것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월가의 반발=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규제안은 거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파생상품 규제를 더 강화하라”고 한 발 더 나아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반발은 거세다. 거액 보너스에 대한 제동, 금융위기 책임세 부과 등으로 가뜩이나 높아진 반(反)오바마 정서가 더 커지는 분위기다. 블룸버그가 지난해 4분기 금융사 종사자 87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77%가 “오바마는 반기업적”이라고 답했다. 앨런 그린버그 전 베어스턴스 최고경영자(CEO)는 “은행에 대한 정부와 대중의 공격은 부당하다”며 “폐지된 법안을 다시 살려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자회사를 통해 자기자본 투자를 해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는 얘기다. 자기자본 투자와 다른 투자를 무 베듯 딱 나누기도 어렵다. 뉴욕 타임스(NYT)는 이번 규제가 ‘금융위기 재발을 막겠다’는 근본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전쟁은 단기전이 아니다. 일단 의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일자리를 잃게 한 금융위기의 주범이 대형 금융사라는 여론은 오바마가 믿는 가장 큰 우군이다. FT는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는 강력한 규제안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막강한 영향력과 로비력을 가진 월가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미국 하원의 바니 프랭크 금융위원장은 “(오바마의 구상이 실현되려면) 5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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