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조혼·동성애·담배 … 확대경으로 본 옛 삶의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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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 땅에 태어나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말 타고 종 부리고
송기호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
각권 300쪽 내외, 각 1만4500원 내외

“영국 왕실이야말로 현존 군주정 중 화려한 역사를 자랑한다. TV방송은 엘리자베스 2세가 고색창연한 마차를 타고 의회 개원을 위해 웨스트민스터로 향하는 모습을 중계하면서 ‘천 년의 전통’을 되뇌인다. 그러나 이런 왕실의례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허망해질 것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에 나오는 말인데, 그건 우리역사에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서구와 달리 우리에게는 의식주·관혼상제까지 엄연히 ‘수천 년의 전통’이 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그게 어떠했는데?”라고 물으면 말문이 턱 막힌다. 송기호 서울대 교수의 책은 이런 답답함을 풀려는 노력이리라. 때문에 왕 이름이나 관직명칭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있는 건 선조들 삶이다. 생활사를 이야기 방식으로 푼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역사서에서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한” 시도는 1995년 고대생활사 강의 이후 쌓아온 자료가 토대가 됐다. 공들여 만든 자료는 소문이 나면서 중고교 교사에게도 퍼져나갔다지만, 내용은 생각 이상으로 담백하다. 어깨에 힘을 뺀 서술 때문에 ‘초등학생 이상 가(可)’다.

불교 국가여서(고려), 농경을 중시해서(조선) 소 도살은 금기사항이었기에 특별한 날이 아니면 쇠고기를 먹기가 어려웠다. 그럴수록 쇠고기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 ‘불고기’가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됐다. 사진은 고기 구워 먹는 모습을 담은 19세기 화가 성협의 그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일테면 2권에 나오는 ‘조혼 풍습’. 사실 궁금했다. 10여 살 꼬마 신랑의 등장은 언젯적부터인가, 조선시대 이전에도 그랬을까 대한 궁금증 말이다. 알고 보니 고려 후기부터 신랑·신부 나이가 내려갔다. 1100년 결혼 평균연령 남자 25.5세, 여자 20.4세로 딱 좋았지만 말기에는 남자 18세, 여자 13.9세로 내려갔다. 원나라에 대한 처녀 공출 공포증 때문이라지만, 조혼은 그 이전부터였다.(2권 93~96쪽) 조선시대 이후 관 주도로 꼬마신랑 없애기 작전이 펼쳐졌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조선후기 신랑의 연령은 12세 전후로 더 떨어졌고, 신부는 16세로 올라간다. 성리학의 여파로 가부장제가 자리 잡으면서 대 잇기가 중요해진 탓인데, 물론 이런 설명에 번잡스러운 각주는 전혀 없다.

다른 풍속사도 흥미로운 게 많다. 전통 계급사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사이의 관계는 우리 고정관념처럼 엄격한 게 아니었다. 외려 아랫사람의 횡포에 전전긍긍하던 윗사람도 없지 않았다. 일테면 17세기 초의 한 상전은 ‘덕노’라고 하는 집 노비가 말을 안 듣자 “매를 때리려 했으나 잠시 참고 용서해줬다”며 “밉살스런 생각을 이길 수 없다”고 분한 마음을 일기에 썼을 정도다.

이밖에 동성애, 담배 예절, 기생과 광대 그리고 사치풍조 등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이 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우선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대중교양서를 펴내는 것부터 의아하다. 종래의 출판부가 확대 개편됐다면, 상업출판이 못하는 영역부터 개척했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당혹스러운 대목은 본문 편집의 수준이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을 밑돈다는 점이다. 2년 전의 문제작 『대항해 시대』(주경철)의 수준에서 한참 먼데, 시쳇말로 대략난감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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