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클럽] 벤처서 일하는 일본인 콤비 마에카와·스기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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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이버 공간에서 얼굴 모르는 바이어를 찾아다니는 일이 참 재미있네요. "

마에카와 기요히로(25).스기이 가오리(26.여) 두 일본 젊은이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의 전자상거래 벤처 업체에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했다.

이들이 몸담은 곳은 해외에서도 이름을 얻고 있는 인터넷 무역 사이트업체 티페이지(http://www.Tpage.co.kr)로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 빌딩에 입주해 있다.

법인 설립 1년여 만에 국내외에서 20여만개의 회원사를 확보했고 영어.일본어 등 8개 국어로 무역정보를 내보내고 있다. 지난 4월엔 뉴욕에 현지법인도 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 '지난 4월 같은 시기에 입사하면서 알게 됐다. 입사 계기는 서로 달랐다. 마에카와는 한국인 친구의 권유로, 스기이는 인터넷 채용 공고를 뒤지다 회사문을 두드리게 된 것. 하지만 한국 벤처행을 결심한 동기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인터넷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다" 고 말했다.

마에카와는 "일본 기업들 역시 e-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국제무역까지 인터넷으로 하는 것은 낯설어 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무기로 삼는 종합상사 전통이 워낙 뿌리깊기 때문인지 사이버 인간관계를 아직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

두 사람은 일본어 사이트의 개설.관리와 일본 바이어.회원 확보 업무 등을 맡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점심시간에서 30분을 쪼개 직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어학강사 노릇까지 자청했다.

심은섭 사장은 "일본의 대졸 초임보다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성실하고 명랑하게 일해 고맙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

1m83㎝의 큰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마에카와는 사내 여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건국대 하숙촌에서 알게 된 친구 소개로 주말엔 현대백화점 축구동우회 틈에 끼여 함께 땀흘리는 축구광이기도 하다.

효고현 간세이가쿠인대 사회학과 3년 재학 중이던 1998년 경남 진주시 경상대에 한달간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한국의 멋에 매료됐다는 마에카와는 졸업 직후인 지난해 4월 한국을 다시 찾아 고려대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후쿠이현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스기이는 98년 이후 중국 다롄과 한국 강원대에서 수학했다. 스기이는 "일본은 여전히 평생직장의 관념이 강해 몇달 만에 회사를 옮기는 한국 벤처기업 직원들의 사고방식이 아직 낯설다" 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빨리 돌아와 시집.장가 좀 가라는 부모 성화에 시달리고 있지만 "뭔가 이루기 전엔 돌아가지 않겠다" 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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