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관객 150만 명 못 들면 망명이라도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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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관람객 150만 명 돌파를 위한 신 경영체계.’ ‘세계 5대 미술관 진입기반 조성.’ 사뭇 전투적인 문구가 춤춘다. 배순훈(67)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2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2010년 목표다. 배 관장은 “전년대비 34% 증가한 관람객 111만 명 기록이 2009년 미술관의 성과”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고객 중심, 공공서비스 효율 확대를 미술관의 올 최대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술관 조직을 사업관리팀 등 8개 팀 체제로 개편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비엔날레나 박람회 성 전시회에서 관람객 숫자가 많고 적음을 성과의 잣대로 들먹이는 건 공무원 사회의 관행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곳이라 여겨져 온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람객 숫자를 들먹이는 건 위신에 안 맞는다. 오죽했으면 미술관 큐레이터 한 사람이 “올해 150만 명 못 들면 망명이라도 가야 하나” 푸념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책임운영제 3년을 거쳐 올해 문화부가 특수법인화 안을 내놓고 상반기 중 국회 상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마케팅에 목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미술관 내부가 아니라 밖에서 밀려오고 있는데 대응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핵심사업 첫째로 꼽은 가칭 서울관 건립도 밀어붙이기식 분위기가 감지된다. 2800억원 예산을 들여 2012년 11월 공사완료 하겠다는 스케줄 우선주의다. ‘공기(工期) 내 건축’을 그토록 강조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궁금해진다. 미술관의 성격, 설계의 과정, 서울관이 들어설 터의 문화재 처리 문제 등 꽤 섬세하고 파장이 클 논의는 ‘이하 생략’ 분위기다. 공학박사 출신 배 관장이 한때 최고 경영자로 몸담았던 기업 광고 카피가 새삼 떠오른다. ‘탱크주의’.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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