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감투싸움' 치닫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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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나로 인해 미움과 반목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모두 용서하시고 사퇴를 계기로 중소기업계가 단합하길 바랍니다."

지난달말 박상희 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은 산하 조합 이사장들이 모인 총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물러났다.

朴 전 회장의 중도 사퇴는 현직 경제단체장의 정치 참여와 자신이 운영하는 미주그룹의 경영부실 등이 직접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같은 朴 전 회장의 발언은 그의 5년 7개월 재임 동안 중소기업계 내부의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朴 전 회장의 사퇴를 계기로 중소기업계의 본산인 기협중앙회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 추진.단체수의계약 품목 축소.중소기업 제품 상설 전시장의 폐쇄 위기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데 집안 싸움으로 날샌다는 이야기를 들어선 안된다는 자성론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차기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과열 양상을 빚고 있으며 조합 이사장간 반목이 다시 불거지는 등 기협중앙회의 진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분열 양상 재연 조짐=1998년 2월 회장 선거는 박상희 전 회장과 이교은 후보 진영이 팽팽하게 맞섰다.

95년 경선에서 朴 전 회장에게 패한 쪽에서 李후보를 강하게 밀었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朴 전 회장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기협중앙회 회장단과 이사회 구성, 단체수의계약 품목 존폐 등을 둘러싼 조합 이사장간 힘겨루기로 시끄러웠다.

기협중앙회 간부는 "회장 선임이 직접 선거로 바뀐 뒤 중소업계 내 골이 깊어졌다" 며 "朴 전 회장이 기협중앙회와 조합의 재정을 자립하기 위해 애썼지만 조합 이사장간 반목을 정리하진 못했다" 고 평가했다.

朴 전 회장의 공백을 메울 차기 회장의 선출방식을 놓고 조합 이사장간에는 내년 2월까지의 잔여 임기를 채울 회장의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쪽과 전준식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내년 2월까지 간 뒤 차기 회장을 뽑자는 쪽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 회장 선거제도 개편론 대두=한 조합 이사장은 "기협중앙회는 몇차례 회장 선거를 치르면서 그 후유증으로 기협중앙회 본연의 기능인 협동조합 운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며 "전경련처럼 원로를 회장에 추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때가 왔다" 고 말했다.

회장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조합 이사장은 "투표권을 가진 1백87개 조합 이사장들이 선거철만 되면 줄서기를 해 정책 대결 등으로 표심(票心)를 잡기 어렵다" 며 "선거가 끝난 뒤 자리를 보장하라거나 자기 조합에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사장도 적지 않아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중" 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어렵게 회장 직선 제도를 도입했는데 회장 추대나 외부 인사의 영입 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며 "회장 출마자들이 공정한 선거를 하겠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고 지적했다.

◇ 입지 좁아지는 중소기업=중소기업의 판로에 도움이 되어온 단체수의계약 품목이 계속 줄고 있다.

내년에는 97년(2백56개)의 절반 이하로 줄어 중소기업 제품의 판매가 압박을 받고 재정이 취약한 일부 조합은 해산해야 할 처지다.

더욱이 중소기업 제품을 전시 판매하던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전시판매장 부지는 서울시가 곧 매각할 방침이어서 중소기업의 판매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는 기협중앙회의 공제기금도 외환위기 이후 5백여억원의 부실을 안고 있어 중소기업 지원 규모가 줄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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