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전국 총파업 돌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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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총파업이 2일(현지시간) 유고 전국에서 시작됐다.

이날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수백명의 파업 참가자들이 폭우를 무릅쓴채 3시간동안 인간띠를 만들고 주요 간선도로를 점거 했으며 밀로셰비치의 고향인 포자레바치 등 주요도시의 교통이 일시 마비됐다.

또한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철도와 에너지 부문 노동자도 파업에 가세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등교거부를 선언하는 등 수십만명이 시민불복종 운동과 파업에 참가했다.

유고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출동준비를 마친 상태나 아직까지 본격적인 시위 진압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DOS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퇴진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4일부터 수도 기능을 마비시키고 8일로 예정된 대선 결선투표를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고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4일 치러진 대통령선거 1차투표에서 이미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야당은 8일 실시될 2차 결선투표 불참을 선언했다.

연일 수십만명이 참가하는 군중집회를 열고 국민들에게 총파업 등 시민불복종을 촉구하고 있다.

또 2일 시작된 총파업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압력도 거세다.'국내문제' 라고 불개입 입장을 밝혀오던 러시아가 야당 지지로 돌아섰고, 미국과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밀로셰비치에 사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고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선거에 불참한 몬테네그로도 야당 승리를 선언하고 밀로셰비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밀로셰비치가 해외탈출을 준비 중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그는 집권 13년 만에 최악의 곤경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밀로셰비치가 쉽게 권력을 내놓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2차 결선투표에 단독 출마해 '승리' 한 다음, 치안유지를 이유로 군과 경찰 병력을 풀어 반대세력을 강경 진압할 가능성이 크다.

밀로셰비치는 1996~97년 겨울 3개월 동안 계속된 대규모 시위를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으며, 97년 7월 세르비아대통령에서 유고연방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겨 위기를 넘긴 바 있다.

권력을 넘겨준다 해도 현재 대통령 임기가 내년 여름까지인 점을 이용, 각종 '개혁' 을 통해 연방대통령 자리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른 총선에서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사회당과 연합세력이 연방 하원 1백38석 중 72석, 상원 40석 중 26석을 차지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97년의 경우를 거꾸로 적용해 연방대통령에서 세르비아대통령으로 자리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

주목되는 것은 군.경찰.준(準)군사조직 등 무력수단이다.이들은 밀로셰비치에 충성을 바쳐왔다.

그 중에서도 경찰과 준군사조직이 중요하다.8만~10만명으로 추산되는 경찰은 헬리콥터.장갑차.기관포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으며, 전과자들이 주를 이룬 준군사조직 역시 위협적이다.

이들은 코소보에서 학살.방화 등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에 비해 직업군인과 징집병 9만명으로 이뤄진 군은 소극적이다.티토식 '인민군' 전통이 남아 있는 군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가혹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은 작다.

밀로셰비치는 변신에 능한 정치가다.80년대 말 민주화 혁명이 동유럽을 휩쓸었을 때 밀로셰비치는 하루 아침에 골수 공산주의자에서 대(大)세르비아 건설을 외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기수로 변신해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가 권좌에 있는 동안 유고는 전쟁.살육.경제난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연방은 산산조각 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코소보사태 등으로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국가는 폐허가 됐고 경제는 파탄상태다.

밀로셰비치 자신도 전범(戰犯)으로 헤이그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돼 있다.

'세르비아의 티토' 가 되겠다는 야심과 달리 '피의 대통령' '발칸의 히틀러' 등 온갖 모욕적인 별명이 붙은 국제사회의 문제아로 전락한 밀로셰비치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정우량 국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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