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국인 칼럼] 법 없이도 산다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서울에 집을 마련했다. 내장이 낡아 있었기 때문에 실내를 개축키로 하고, 아파트 일을 주로 하는 인테리어 업자에게 의뢰하기로 했다.

대충 생각하고 있는 바를 설명한 후 사장에게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반대로 "얼마나 주실 수 있으세요?" 라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당혹해하면서도 아파트 구입가격의 10% 정도에 해당되는 가격을 제시하니, "그 가격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답한다.

필자는 친한 친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친근감을 느꼈고, 일본인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장은 매우 좋은 사람처럼 느꼈다.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장은 언제까지 견적서를 제시할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이쪽도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여기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추가 요구를 몇가지 하게 되었으나, 사장은 언제나 "알겠습니다. 해드리지요" 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사를 하고 살다보니 천장에 구멍이 있거나, 주문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등 여러가지 불비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장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해 드릴테니, 잔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국이 고향인 나의 처로부터 공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돈을 지불하지 말라고 들었으나, 금액이 그리 크지 않고 사장도 딱하다는 생각에 돈을 건네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며칠을 기다려도 일을 하지 않는다.

3주일 정도 지난 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사장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돈을 건네 준 내가 바보였네요. " "무슨 말씀을 하세요? 저는 서비스를 해드리고 있는데……. " "……?" 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받은 금액에 해당하는 일은 전부 이사하기 전까지 완성했고, 나머지 부분은 서비스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사장의 주장. 잠깐만. 견적서도 없고, 여기서부턴 서비스라는 이야기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공사가 계약금 범위 내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이쪽의 주장.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나는, 다시 한번 일본과 한국의 문화차이를 의식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한국에는 친절은 있으나, 서비스는 없다" 는 말을 남긴 일본인이 있다.

한국인에 있어서 서비스란 친절과 동의어이므로, 하자고 생각하면 '해주지만' , 해주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점이나 술집.호텔에서도 '단골' 이 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손님의 입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한국인의 태도는 한국인의 독특한 법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법은 본래 인간의 행동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엇이 정의인가를 정할 필요를 느껴 만들어진 것이다.

정의에 대해 의문이 나오거나 의견의 차이가 생길 때야말로 법이 필요하게 된다.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는 법이 있는 것도 그 명제에 의문이 생길 여지가 있으며, 의문이 생길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테리어 사장처럼, 본래 정(情)이 성립하기 어려운 고객과의 관계까지도 법이 아닌 정을 기준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오해가 생기는 것만이 아니다. 정이 법을 초월하는 사회에선 준법 의식이 낮아진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정가가 없으며, 가격이 정에 따라서 정해진다면 누가 가격표를 믿겠는가? 누가 세무서에 소득을 솔직히 신고하겠는가? 인간의 유죄와 무죄까지도 정에 의해 판결내려질 수 있다면, 누가 사법 정의를 믿겠는가? 만약 재판관이나 검사의 판단이 대통령과의 정에 따라서 정해진다면, 공작의 최종목표는 대통령이 된다.

이리하여 법질서는 붕괴하고, 법치 아닌 인치가 지배하는 사회가 형성된다.

정으로 둘러싸인 관계의 안쪽은 따뜻하고, 마음 편하다. 그러나 그 바깥은 불신과 대립, 폭력이 넘치는 세계다.

하나의 나라에 이와 같은 두 가지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다.

민주화가 성숙 단계에 도달한 한국에 남은 가장 큰 과제는 철저한 법치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 정권은 정치 사법을 버려야만 하고, 야당은 장외투쟁을 그만둬야만 한다고 생각되는데, 어떨까?

기시 도시로 <일본 저널리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