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9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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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을 노래> - 박시교

갈색 바람 일렁이는 구월과 시월 사이

그 무슨 병처럼 가슴에 타오르는 불

내 안다, 안으로 울음 삼키는 저 산 속앓이

먼 사람아, 가을산 같은 그리운 사람아

사랑도 열매처럼 달게 익을 수는 없는가

시간은 결코 머무는 일 없이 흘러만 가는데

억장 무너지던 우리들 지난(至難)한 삶

그 아득한 구비 돌아 또 한세월 저문다

그림자 길게 드리운 한 사내의 가을 저문다

◇ 시작노트

조락(凋落)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 무렵이면 내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병도 저렇듯 붉게 물드는 나뭇잎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터. 또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그리움도 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게 마련이다.

그렇게 이 계절은 깊어갈 것이고 나는 또 그 깊이만큼 앓아야만 한다. 그로해서 내 생각의 나이테는 분명 더 짙어질 것이고...

누구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그리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바꾸어 본다.

바야흐로 그리움의 계절에 못내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이 시를 보낸다.

<약력>

▶1945년 경북 봉화 출생

▶1970년 매일신문 신춘 당선, 현대시학 추천 등단.

▶시집 '겨울강' '네 사람의 얼굴' '가슴으로 오는 새벽' 등 출간

▶오늘의 시조문학상.이호우문학상.중앙시조대상 등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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