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3가지 성공 조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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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최근 티머시 고어즈라는 영국 수학자의 실험이 소개됐다. ‘해일스 주렛(Hales-Jewett)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개인 블로그와 위키피디아를 이용해 누구나 증명에 함께 참여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놀랍게도 37일 동안 세계적 석학과 대학원생 등 27명이 약 800개의 새로운 발상을 올려놓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증명 방법을 찾아냄과 동시에 다양한 파생지식을 낳았다. 과거의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고독한 싸움을 했다면, 이제는 수학적 증명마저도 집단적 연구를 통해 혁신적 성과를 내고 있다.

물리학자들에게는 이런 공동연구가 매우 익숙하다.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경우 한 실험 그룹에 38개국, 183개 기관, 3600여 명의 연구원이 함께 연구한다. 이런 공동연구 활동을 원활히 하도록 개발된 것이 www(World Wide Web)였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는 ‘일본과 한국 같은 벼농사 국민은 팀워크에 강하기 때문에 공동연구가 필요한 현대과학을 잘할 것’이라는 희망적 발언을 했다. 이런 팀워크와 협력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벨트’다.

1월 11일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됐다. 그 안에 따르면 세종시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진다. 건국 이래 최대 기초과학 진흥사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중이온가속기가 세워지면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세종시에 오게 되고,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어낼 새로운 과학지식이 인용될 때마다 세종시 이름이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각인될 것이다. 즉 앞으로 세종시는 세계적인 도시가 될 것이다. 세종시에 추가로 들어갈 기관으로는 ‘벨트조성지원센터’가 예정돼 있다.

이곳은 네트워크와 팀워크를 엮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계획에 따르면 충청권을 중심으로 하는 C벨트와 전국을 엮는 K벨트가 조성될 것이다. C벨트란 대덕특구, 오송 바이오단지, 오창 산업단지를 세종시와 함께 핵심 벨트로 조성하는 것인데 이들을 연결하면 C자 모양이 된다. K벨트는 세종시를 K자의 중심에 두고 위로는 수원·안산·서울·인천을 연결하고, 아래로는 군산·전주 등 전북, 광주·광양 등 전남 지역을 포함한다. K자의 대각선은 오송·오창을 지나 원주와 강릉을 지나는 선과 대전·대구를 지나 포항·울산·부산·창원을 연결하는 선으로 돼 있다.

‘벨트’라는 말에는 앞서 말한 지형적 의미 외에도 기능적 의미가 담겨 있다. 산학연 협력연구, 기술정보 교환, 기술거래, 데이터베이스 공유, 라이선싱, 기술금융, 행정지원, 인력 양성·교육, 법률 지원 등 모든 필요한 요소들을 기능적으로 벨트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지역별로 산업단지, 연구단지, 테크노파크 등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바람에 상호 교류·협력체계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벨트조성지원센터는 지역의 벽을 뛰어넘어 광역화를 이루고, 시너지 발생이 가능한 임계 질량을 확보하며, 기초·응용과 사업화를 융합함으로써 비즈니스를 실현하는 선순환적 생태계 조성 역할을 할 것이다.

전국의 기업도시, 혁신도시, 테크노파크 등이 세종시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 등과 함께 마음을 터놓고 상호보완적으로 자유롭게 교류할 때 지역별로 특성화된 기술 개발과 산업화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수학문제 증명에서 보다시피 자유롭고 투명하고 창의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면,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혁신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연구 성과가 전국 대학·연구원·산업단지 등과 연계될 때 놀라운 성과가 봇물 터지듯 대한민국 전역으로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홍승우 교수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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