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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 여행 ② 버리는 트럭 덮개, 명품 가방이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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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중고 트럭 덮개와 안전벨트로 만든 프라이탁의 가방 시리즈. 저마다 다른 패턴과 견고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재활용은 친환경 운동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버려지는 폐품을 다시 쓴다는 점에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듯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쓰레기에 디자인을 가미해 만든 상품을 파는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더러는 패션 리더들의 열광 속에 꽤 비싼 가격에 팔리는 제품도 있지요.

한국의 에코파티메아리

우리나라에도 재활용디자인 브랜드가 있습니다. 에코파티메아리(www.mearry.com)입니다. 이 브랜드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에서 2007년 출범한 에코 디자인 브랜드로 그 수익금은 나눔사업에 사용합니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되는 각종 중고 의류와 재료를 활용합니다. 양복 재킷으로 만든 가방과 배낭, 스웨터를 잘라 만든 목도리, 천갈이를 하고 나온 낡은 소파 가죽으로 만든 필통과 지갑, 구청에서 수거한 현수막으로 만든 휴대전화 줄, 재생지로 만든 수첩, 아기 옷으로 만든 멸종동물 인형 등입니다.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자세히 보기 전에는 재료에 감춰진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나쳐버리기 쉽습니다.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

재활용 디자인계의 큰형님은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www.frietag.ch)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프라이탁 형제가 비에 젖지 않고 튼튼한 자전거 가방을 찾다가 창 밖 고속도로의 트럭 행렬에서 착안해 1993년 만들었습니다. 버리는 트럭 덮개와 자동차 안전벨트, 자전거 고무튜브를 조합해 가방과 노트북 커버 등을 만듭니다. 가격이 꽤 비싸지만 의식 있는 패션 리더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유럽·미국·중국·일본·호주 등 전 세계 350여 개 매장에서 팔립니다. 그 인기는 중고 트럭 덮개가 수급을 맞추지 못할 정도죠. 에코파티메아리의 현수막 가방이 그렇듯이 프라이탁의 가방도 같은 무늬가 나올 수 없는 ‘나만의’ 제품인 데다 환경에 해를 덜 끼친다는 착한 심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인기를 끄는 것입니다.

독일의 지르켈트레이닝

지르켈트레이닝(www.zirkeltraining.biz)이라는 독일 브랜드도 있습니다. 동유럽권이 체조 종목에서 메달을 휩쓸던 화려한 시절은 가고, 이젠 인기마저 시들해진 가운데 이 지역엔 중고 체조운동기구와 체육관 매트가 남아돌았죠. 이를 활용해 운동 가방과 여성용 핸드백 등을 만듭니다. 버려진 뜀틀과 도마의 가죽과 체조 매트 등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2007년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창백한 피부에 무표정한 체조선수가 등장하는 복고풍 광고 사진이 독특합니다. 낡은 빈티지 가죽에서 땀냄새가 배어날 듯해서 재미있습니다.

핀란드의 글로베호프

군복과 병원 수술복, 배의 돛 등을 재활용해 옷과 가방·벨트·노트북·목걸이 등을 디자인하는 글로베호프(www.globehope.com)라는 핀란드의 패션 브랜드도 눈에 띕니다. 핀란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개발에 무척 신경을 쓰는 정책 덕분에 자연환경과 문명의 조화가 인상적인 북유럽 국가지요. 핀란드와 스웨덴 등지에서 싼값에 가져온 다양한 낡은 재료를 자르고 이어붙이는 디자이너들의 손길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의지가 드러납니다.

재활용이 친환경 디자인의 전부는 아닙니다. 지속적인 재활용과 최종적 폐기에 대한 고민 등이 여전히 남죠. 하지만 재활용 디자인의 긍정적인 기능은 많습니다. 남이 쓰던 물건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켜 주고, 재활용 제품도 스타일리시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주죠. 보는 이의 창의성이 불끈 샘솟게 해서 ‘나도 저거 할 수 있겠는데!’라며 옷장을 뒤지거나 거리에 내버린 쓰레기를 주워다가 재활용하도록 유도한다면 더욱 훌륭하죠. 재활용 브랜드를 통한 착한 디자인의 나비효과를 기대해 볼까요?

디자이너 박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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