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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국내 복귀작 ‘하모니’에서 최루연기 보인 김윤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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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눈물이 넘실대는 영화 ‘하모니’를 보며 김윤진은 딱 두 번 울었다. 하나는 “영화 속 내 모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예쁜 아기를 입양 보내는 장면, 또 하나는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사형수 문옥(나문희)과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다. 영화 속에선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했던 그였다. [김민규 기자]

김윤진(37)은 소문대로 달변이었다. 또 단단했다. 본인 영화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단점을 입 밖에 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28일 개봉하는 ‘하모니’는 ‘세븐 데이즈’ 이후 3년 만의 출연작. 그는 실수로 폭력 남편을 죽인 뒤 투옥된 여자 정혜를 맡았다. 정혜는 교도소에서 아들 민우(이태경)를 낳는다. 민우가 생후 18개월이 지나면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정혜는 죄수를 모아 합창단을 만든다. 성과가 좋으면 민우와 특박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다. 사형수 문옥(나문희)이 지휘자다. 문옥은 부정한 남편과 그 애인을 차로 치어 죽인 과거가 있다.

다가오는 이별, 눈에 선한 결말. 그런데 눈물은 넘치고 또 넘친다. ‘하모니’는 노골적인 최루 드라마다. ‘웰메이드’에 대한 욕심은 버린 느낌이다. 대신 관객의 감정선을 정확하게 건드린 영리한 영화다.

김윤진도 그 점 때문에 출연을 망설였다. “줄거리를 몇 줄 듣지도 않았는데 어떤 영화인지 알 것 같았어요. 어디에서 관객을 울려야 할지 하나하나 계산한 듯했죠.”

그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강대규 감독과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푼수끼 있고 밝은 성격의 음치 정혜가 탄생했다. 조금씩 마음이 동했다.

“유쾌하고 밝은 영화, 여자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영화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지더군요.”

똑똑하고 당찬 여성. 액션과 스릴러를 오가며 그런 역할을 도맡았던 김윤진이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한국 여인 써니로 뜨기 전까지 늘 그의 이름 앞에 붙었던 말이 ‘쉬리의 여전사’ 아니었던가. “전사(‘쉬리’)나 변호사(‘세븐 데이즈’)에서 좀 벗어나볼까 했었죠. 영화를 끝내놓고 보니 정혜도 결국 꿋꿋하고 씩씩한 여자가 됐네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에 본능적으로 끌리나 봐요.”

촬영장에서 그가 가장 많이 되뇐 단어는 ‘절제’다. 자기 먼저 ‘울컥’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배우든 눈물 연기는 쉬워요. 그런데 현실은 다르죠. 성인이라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보다 참으려고 애쓰지 않나요. 촬영 도중 나문희 선생님 눈에 고인 눈물을 본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아무 말이나 동작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온 몸에 배어있는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더군요. 저거다, 관객이 울게 해야지 내가 먼저 나서 울면 안 되겠구나 다짐했어요.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눈물을 참는 것에 더 신경써야 겠구나 했죠.”

그는 리얼리티를 위해 출산 장면에선 ‘100% 생얼’을 고집하기도 했다. “저 정말 안 예쁘게 나왔죠? 힘줄에 뾰루지에…. 시사회 때 얼굴이 화끈거려 정말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었어요.”(웃음)

나문희. ‘하모니’ 덕분에 김윤진에게 특별해진 이름이다. “지금껏 연기하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깊이 교감한 배우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나 선생님과 눈만 마주치면 슬퍼지고 눈물이 핑 돌았어요. 대사 주고 받을 때 서로 쳐다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요. 선생님 덕분에 감정을 훨씬 더 격하고 깊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10년 전 ‘쉬리’ 때 최민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단다. “상대 배우가 빛나야 나도 빛난다는 말, 이런 말이구나 실감했어요.”

‘하모니’를 끝낸 김윤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월드스타’의 명성을 안겨준 ‘로스트’는 시즌6을 끝으로 5월 막을 내린다. 자신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편안한 환경에만 머무를 생각, 아직은 없다. “좋은 작품 찾아 또 오디션 보러 다녀야죠. 수없이 떨어지겠죠. 각오는 돼있어요. 전 포기는 빨리 해요. 그런데 포기하기까진 죽을 힘을 다해요. 이왕 시작했으니 아카데미상 받는 그날까지 해보려고요. 제 꿈은 제 거니까 무엇을 꿈꾸든 제 자유잖아요.”

강인하고 똑똑하고 당찬 배역이 몰리는 이유, 알 것 같았다.

기선민 기자 ,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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