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중환자실 사망률, 의료 선진국답잖은 11.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대한민국 중환자실이 중병에 걸렸다.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주최: 전현희 의원실, 대한중환자학회) 열린 중환자실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국내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사망률이 11.9%(서구 9.8%)로 높은 것은 물론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 준비 비율, 호흡 치료사 수 등이 말레이시아·인도·중국보다 낮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물론 이는 대한민국 중환자실 평균 수치이며, 사망률 5% 미만인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 성적을 보이는 병원도 있다. 하지만 암치료 성공률을 비롯, 각종 난치병 치료 성적이 선진국 수준인데 반해 유독 중환자실 사망률만 뒤처진다는 사실은 실망스럽다. 왜 그럴까?

우선 병원에 따라 중환자를 치료하는 진료의 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보상은 동일하다는 제도적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현행 의료법은 ‘중환자실을 전담하는 전문의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진료를 해도 수가는 동일한 것이다. 자연 국내 병원 중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를 둔 곳은 극히 드물다. 어린이는 소아과 전문의가, 개복 수술은 외과 전문의가 수술하는 게 바람직하듯 중환자 역시 중환자 전문의가 맡아야 진료의 질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중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병원 적자를 심화시키는 낮은 의료수가도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현재 중환자실 치료비 보상 비율은 30~50% 선이다. 실제 소위 말하는 초일류병원에선 중환자실 병상 한 개를 운영할 때마다 매년 5000~8000만 원의 적자를 본다. 20병상인 중환자실을 1년 운용할 경우 병원은 매년 10억원 이상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초일류 병원에서조차 중환자실은 병원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취급받고 병상도 가급적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문제 상황은 이른 시일 내에 개선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사실 1970년대 시작된 낙후된 의료제도를 급속히 발전하는 병원 현실에 맞게 수시로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다. 또 현재의 문제 상황을 조금씩이나마 수정·보완할 위치에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한 뒤 개선책을 마련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지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가족이 중환자실에 입원할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훌륭한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선진국 수준의 초일류 병원에서 ‘명품 치료’를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 전국 중환자실의 평균 사망률이 높더라도 이들에겐 문제의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을 리 없다. 보통 사람들이 보통 중환자실에서도 수준급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해 줄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가 전문가와 합심해 바람직한 중환자실 운영 방안을 도출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