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투자 효과 내도록 변화 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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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26면

물이 든 작은 유리컵에 파란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려 보자. 물은 금세 파란색으로 변한다. 이번엔 커다란 양동이에 담긴 물에 그렇게 해 보자. 파란 잉크는 물과 섞이며 푸르스름해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양동이의 물은 그대로다. 같은 잉크 한 방울이라도 상황에 따라 미치는 영향은 확연히 다르다.

돈이 되는 금융상품 - 적립식 펀드

적립식 펀드가 꼭 이렇다. 적립식 펀드는 2003년 랜드마크자산운용(현 ING자산운용)이 ‘1억만들기’를 내놓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래에셋이 가세하면서 적립식 펀드 ‘열풍’이 점화됐다. 돈을 나눠 투자해 매입 단가를 평준화시킨다(코스트 애버리지)는 효과에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적립식 펀드를 예금의 몇 배 수익을 안겨주는 ‘적금’처럼 받아들였다. 당시 5조원을 넘지 못하던 주식형 펀드를 100조원이 넘는 시장으로 키워낸 것도 적립식 펀드의 힘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투자자들의 발등을 찍었다. 원금 손실이 안 날 줄 알았던 적립식 펀드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당황한 투자자들은 적립식 펀드를 외면했다. 일부는 원금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환매했다. 또 다른 일부는 원금을 회복하자마자 적립식 펀드에서 발을 뺐다. 지난해 증시가 꾸준히 오르는데도 주식형 펀드에서는 돈이 계속 빠진 이유다.

위기에 적립식 펀드가 맥을 못 춘 것은 시장의 낙폭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투자 기간이 길어지면서 적립식 펀드가 거치식 펀드처럼 돼 버렸다. 양동이에 물을 떨어트리는 격으로 뭉칫돈이 된 적립식 펀드에 매월 돈을 넣어봐야 코스트 애버리지 효과가 희석됐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매달 일정액을 투자하는 적립식 투자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진화된 적립식 투자법으로는 먼저 ‘키핑 플랜(Keeping Plan)’이 있다. 말 그대로 돈을 지키는 전략이다. 적립식 펀드의 평가 금액이 목표한 수준을 달성하면 펀드를 환매해 안전자산에 넣는다. 이후 투자 금액은 계속 적립식 펀드에 넣는다. 일단 벌어놓은 것은 지키고 가자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시장이 급락해도 원금은 손실 날 우려가 없다. 문제는 시장이 계속 오를 경우다. 펀드를 그냥 놔둔 것에 비해 훨씬 못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투자자에게 알맞은 투자법이다.

‘스윙 플랜(Swing Plan)’도 있다. 기준 지수를 정해 구간마다 투자 전략을 달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코스피지수 1500 선을 기준으로 상단 20%, 하단 -20%로 정했다고 하자. 지수 1200~1800 선에서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에 반반씩 투자한다. 1800 선을 넘어서면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해 안전자산에만 몰아 투자한다. 반대로 1200 선 밑으로 내려가면 저평가됐다고 보고 투자금의 100%를 위험자산에 넣는다.

시장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투자 대상 자산을 바꿔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기준점을 얼마로 잡고 변동폭을 얼마로 할 것이냐는 점이 문제다. 이걸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큰 차이가 난다. 또 사람이기 때문에 상승장의 탐욕과 하락장의 공포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원칙을 어기고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매매해 오히려 손실을 키울 수도 있다.

‘밸류 애버리징(Value Averaging)’은 평가금액이 일정 비율로 증가하도록 투자 금액을 달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매달 10만원씩을 적립식 펀드에 넣는다고 하자. 첫 달 10만원을 넣었는데 증시가 올라 평가금액이 13만원이 되었다. 그러면 두 번째 달에는 7만원만 넣어 평가 금액이 20만원이 되도록 한다. 세 번째 달, 증시가 급등해 평가금액이 35만원이 되었다면 목표한 30만원을 초과한 5만원은 환매한다. 네 번째 달 시장이 급락해 평가금액이 28만원이 됐다면 목표액(40만원)에 모자라는 12만원을 투자한다. 증시 급등으로 펀드가 초과 수익을 냈을 때는 이를 환매해 이익을 실현하고 급락하면 더 많이 투자하는 방법이다. 쌀 때 더 사고 비쌀 때 덜 사는 식이라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미래에셋증권 김동엽 퇴직연금교육센터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증시 상황에 관계없이 밸류 애버리징이 가장 효과적인 적립식 투자법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립액 규모가 커지면 밸류 애버리징 전략을 실천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매달 100만원씩 투자해 적립액이 1억원이 된 상황이라면 펀드 가치가 1%만 떨어져도 평가 금액이 9900만원이 돼 목표 금액(1억100만원)에 모자라는 200만원을 추가로 넣어야 한다. 투자 전략을 지키려면 갑자기 1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매입과 환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도 많이 생길 수 있다. 또 스윙 플랜과 마찬가지로 탐욕과 공포에 사로잡힌다면 계획대로 투자를 진행하기 어렵다.

일부 금융회사에서는 진화된 적립식 투자법을 활용한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삼성증권이 출시한 ‘삼성CMA+적립팩’이 대표적이다. 투자 성향에 따라 키핑·스윙 플랜 등을 활용해 적립식 펀드를 관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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