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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아는 것만이라도 해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9호 30면

KT의 아이폰 도입 이후 새해부터 스마트폰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SK텔레콤이 구글의 넥서스 원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데다 삼성전자·LG전자까지 가세해 스마트폰 생산을 늘린다니 점입가경이다. 그동안 아이폰을 국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던 IT 매니어들에게는 승전보나 다름없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과점체제지만 대단히 경쟁적이다. 시장이 경쟁적이면 소비자는 그만큼 이득이다. 서비스 선택의 폭은 넓어지면서 가격은 하락하기 때문이다. 경쟁시장은 또 정보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시장 참가자에 의한 모니터링 능력을 높여 시장의 비효율을 줄게 한다.

금융산업은 통신산업과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내수산업으로서 일정 규모 이상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대규모의 초기 고정투자를 필요로 하고 기술혁신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또한 둘 다 ‘라이선스 비즈니스’다. 정책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산업에 진입할 수 있고, 비즈니스 전개 과정에서도 당국과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성장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유사성에도 통신산업의 경쟁적 성장에 반해 국내 금융산업에서는 경쟁과 창조적 혁신의 노력이 보이질 않는다. 고객이 특별히 다른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경쟁 정책의 부재, 둘째는 느슨한 규제(regulatory forbearance)다.

경쟁정책 당국은 그동안 재벌의 독과점 폐해 해소에만 주력했지 금융산업의 경쟁정책 집행에는 소홀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은 외형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대형화와 함께 금융의 수렴화(financial convergence)도 진행되고 있다. 회사가 커지고 취급하는 품목도 많아졌다. 당연히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이 과정에서 산업구조나 상품 및 서비스의 기반과 범위, 형태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정책대응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생긴다. 그런데 경험 부족인지, 인력 부족인지, 의지 부족인지 경쟁정책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감독당국의 느슨한 규제는 금융회사의 비효율을 낳는다. 비체계적 경영은 방만한 대출심사와 불건전한 영업 관행을 용인하게 된다. 느슨한 규제는 감독당국의 의도대로 각본을 연출하는데 여러모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심각하다. 금융회사는 수년 동안 번 돈을 한번에 날릴 수도 있고, 심하면 폐업까지 감수해야 한다. 체제적 위험으로까지 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의 몫이다. 하루빨리 규율과 원칙에 입각한, 이른바 자동격발장치와도 같은 금융감독이 절실하다.

요즘 금호사태와 관련해 책임공방이 치열하다. 특히 채권은행은 그동안 뭘 했느냐며 몰아세운다. 그러나 내 코가 석 자인 사람한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건 아닐까. 당신이 은행 CEO라면, 과연 ‘선제적’으로 문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겠는가? 구조조정은 충당금 부담을 가중시켜 그해 결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연임은 고사하고 임기 채우기도 힘든 풍토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느니 지연작전을 구사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음모론적 시각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영 실패를 자인할 경영자는 거의 없다.

금호그룹의 방만한 위험추구 경향과 채권단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응을 두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이번 사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은행들이 상업적 원리에 입각해 경영하고, 감독당국이 엄격한 건전성 감독을 미리 했다면 금호사태가 이제야 나타났겠는가. 결국 금융감독 당국의 느슨한 규제와 경쟁정책 당국의 정책부재가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렀고, 이로 인해 주기적 금융부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분명 한국 금융의 구조적 문제다. 시스템적 접근을 통한 문제해결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금융시장이 경쟁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시장을 경쟁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금융의 선진화가 더딘 우리나라에서는 정책당국이나 감독당국의 활약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2003년 SK 사태가 불거졌을 때 모 시중은행 임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동안 SK그룹에 수조원의 대출을 하고 있었지만 리스크를 감안한 이익규모를 계산해 보니 1년에 수십억도 되지 않았다. 그 돈을 벌자고 회사의 명운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업 관행이다. 아시아로, 글로벌로 수출해야 한다는 구조조정 역량은 다 망발이었나. 그동안의 교훈은 이미 잊어버린 것인가? To know is one thing, to do is another.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확실히 별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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