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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본질 탐색한 인류학 보고서 '우리 무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하늘와 땅 사이에 서서 펄럭이는 소매로 신을 모시는 사람을 무당이라고 한다.巫(무)라는 한자는 바로 그 소매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이다.무당은 하늘의 신에게 인간의 소원을 고하고,땅과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해준다.무당은 신을 모시는 사제이자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인 것이다.그러나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조 이후 무당은 천민으로 떨어졌다.그래서 지구상에서 좀처럼 보기드문 천민 사제가 되었다.”

관동대 국문과 황루시 교수가 펴낸 ‘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풀빛)는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무당과 무속에 관한 현장보고서다.책의 목적에 대해 저자는 “지난 25년간 내가 경험한 무속의 현장을 솔직하게 알리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무속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한국문화의 근간으로서 무속의 연구,그 신앙의 사제자로서의 무당의 연구,그리고 한국인의 본질을 찾고 나의 근원을 탐색하는 공부”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시대의 샤먼에 대한 애정어린 문화인류학적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제1장 ‘도봉산 호랑이’▶제2장 내가 만난 무당들▶제3장 굿의 현장▶제4장 무속의 리얼리즘으로 구성돼있다.

핵심적 내용은 제2장에서 자신이 만난 8명의 큰 무당들의 가족사와 얽혀있는 사연들,굿하는 절차와 사설의 의미 등을 쓴 부분과 제3장에서 ‘죽음의 이해-넋굿’‘소외된 자들의 잔치-조상굿’‘공동체를 다지는 마을 굿’ 등을 풀이한 곳에 들어있다.

예컨대 밤섬 주민들의 ‘부군당굿’ 등은 서울에 아직도 남아있는 마을굿의 대표적인 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는 1968년 한강의 밤섬이 폭파된 후 집단이주한 40가구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있다.이주해서 제일 먼저 지은 집이 바로 마을의 수호신이 거주하실 부군당이었다. 해마다 정원 초이튿날이면 밤새워 굿을 한다.마을을 떠난 사람들마저 찾아와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배목수가 주된 생업으로 땅콩을 재배하며 살던 밤섬을 떠나게 되었을 때,이들은 갑자기 황량한 대도시 한복판에 내동댕이 쳐진 자신들을 발견했다.이들은 부군당을 중심으로 서로 의지하고 살았다.자기들만의 세계를 부군당굿이라는 고유의 신앙이 갖는 결속력으로 이겨내온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무속의 심리상담,공동체 유지 등의 기능을 평가하고 있다.“우리 역사에서 고통을 가장 몸으로 체험한 계층은 바로 굿을 했던 민중들이었다.무당 불러 굿하는 일은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사람의 일에는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이고 굿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위험을 당해 본 사람이 최후로 선택한 삶의 전략인 것이다.인간의 힘으로 안된다면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겨내고 싶다는,또는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삶의 의지가 그들로 하여금 굿을 하게 만든다.

” 이 책은 민초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굿을 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굿거리에서 풀어내놓는 한과 그리움은 읽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이리도 고단하고 한스럽게 살아왔나”하는 탄식에서다.

저자는 이화여대 국문과에서‘무당 굿놀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1976년부터 무속현장 답사를 시작해 최근에는 일본,미얀마,타이완,베트남의 무속과의 비교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인의 굿과 무당’‘팔도 굿’‘장승제’‘기층문화를 통해서 본 한국인의 상상세계(공저)를 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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