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4시] 일본 공산당의 대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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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 경찰백서는 해마다 '공안 유지' 라는 장(章)에 활동 상황이나 당원수 등 일본 공산당의 동향을 싣는다.

공산당은 중의원에 20명, 참의원에 23명의 의원이 있고 지방의회에도 4천4백52명(8월 말 현재)의 의원을 진출시켜 기존 정당 가운데 최대다.

그런데 일본 경찰백서는 공산당을 좌 폭력단, 옴진리교 등과 같은 장에서 다루고 있다. 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라고 경찰청 공보 관계자는 설명한다.

이런 공산당이 대변신을 꾀하고 나섰다. 더 이상 체제 자체의 변혁보다는 현실 인식을 다분히 강조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19일 당 중앙위원회에선 당규약 전문의 '혁명' '전위(前衛)정당' 이란 표현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일본 국민의 당' '국민이 주인공' 이라는 용어를 담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아닌 국민정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여기다 '하급자는 상급자를 따라야 한다' 는 조항도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직적인 배제를 해서는 안된다' 고 바꿨다. 당 규약을 전면 손질한 것은 1958년 이래 42년만이다.

11월의 당 대회에서 채택할 결의안에 유사시 자위대의 출동을 인정한다는 내용도 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자위대가 위헌이라는 입장이었다.

일본 공산당이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노선으로 돌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이들의 변신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98년 참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8백19만표를 얻어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가 지난 6월 중의원 선거에서는 6백71만표를 얻는 데 그쳤다. 당원 수도 38만명으로 10년새 10만명이 줄었다. '열린 정당' 으로 바뀌지 않으면 현상 유지도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야당 연립 집권 구상과도 맞물려 있다. 공산당과의 연립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다른 당과의 이념적 울타리를 낮추는 작업이다.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연정 참가의 길을 걸어온 이탈리아 공산당의 사례를 보는 듯하다.

일본 공산당의 변신에 집권 자민당은 "공산당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색깔론을 내세워 야당 연립을 막으려는 의도도 보인다. 그러나 일본 공산당의 노선 전환은 되돌리기 어려운 대세라는 데 이의를 다는 이는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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