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동시입장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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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 동시 입장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남북 선수단 입장을 기립 박수로 맞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은 "이번 올림픽에는 세 가지 화제가 있다.

첫째는 남.북 동시 입장이고, 둘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단일팀 출전이며 셋째는 동티모르가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그중 남북 동시 입장은 최고 화제" 라고 소감을 피력.

○…동시 입장한 남북 선수단은 1백80명. 대외적으로는 남.북이 90명씩 참가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북쪽 61명과 남쪽 1백19명이 똑같은 감색 상의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입장했다.

선수단 규모가 작은 북한은 유도 등 체중 조절이 필요한 선수들과 임원까지 총동원한 반면 3백98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은 상당수 종목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특히 16일과 17일 경기를 갖는 사격과 유도.복싱.역도.배드민턴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선수촌에서 휴식을 취했다.

○…남북한 동시 입장으로 시드니 올림픽에 대한 온 국민의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체육인들은 환영의 목소리와 함께 태극기를 달지 못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전병관은 "남북한 선수가 같이 손잡고 입장한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다" 며 "최초의 동시 입장인 만큼 한민족 의식을 갖고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고 말했다.

에스원 태권도팀 김세혁 감독은 "매우 경사스럽고 감개무량한 일" 이라며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된 것을 계기로 평화 통일도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한편 대한테니스협회 김두환 회장은 "동시 입장은 열렬히 환영하지만 4년간 금메달을 위해 땀 흘린 대표선수들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지 못하고 태극기도 흔들지 못한 채 입장해 아쉬웠다" 며 "협상 과정에서 가슴에 태극 마크라도 달게 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 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동시 입장에도 불구하고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는 주경기장인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따로따로 걸려 분단의 아픔을 실감케 했다.

참가국의 국기가 모두 걸린 메인 스타디움 지붕에서 인공기는 본부석 맞은편 중앙에 위치, 관람석에서 눈에 잘 띈 반면 태극기는 본부석 오른쪽 지붕 끝에 걸렸다.

○…동시 입장에 참여한 선수.임원들은 한결같이 흥분된 표정. 공동기수인 정은순은 "선수로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만 해도 영광인데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으니 평생 잊지 못할 것" 이라며 들뜬 모습.

펜싱의 김영호는 "처음에는 좀 어색했는데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곧 풀렸다. 입장하면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박수를 받으니까 내가 한민족이란 게 자랑스러웠다" 며 "다음 올림픽에서는 단일팀을 이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박종학 유도 감독은 "새 천년 첫 올림픽에서 동시 입장이 성사된 만큼 21세기 남북한 스포츠 교류는 급물살을 탈 것" 이라고 말했다.

○…동시 입장한 한국 선수들의 옷이 대부분 작아 급히 마련한 것이 확연히 드러난 게 옥에 티. 추석 연휴기간 선수들의 옷 치수도 재지 못하고 기성복 중에서 대.중.소로 급히 구하는 바람에 선수들 체격에 꼭 맞지 않았다.

유도.역도.체조.다이빙 등 체급 종목 위주로 출전한 북한 선수단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배구 등 구기 종목 선수들이 많아 체격이 큰 한국선수단에겐 옷이 대체로 작았다.

○…선수촌 숙소가 1백m쯤 떨어진 남북 선수단은 동시 입장에 대비해 오후 7시(현지시간)에 시작되는 개회식보다 세 시간 가량 이른 오후 4시쯤 한국 선수단 숙소에 집결. 한 시간 동안 예행 연습을 하고 선수촌에 대기한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남북 선수들은 다섯 대의 버스에 섞여 타고 주경기장 옆 대기장소인 슈퍼돔에 도착. 남북 선수.임원들은 지루할 수도 있는 대기 시간 내내 이야기꽃을 피워 더욱 친해졌다.

선수단은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동티모르의 입장 순서가 1백99번째로 변경되는 바람에 당초 97번째에서 96번째로 입장했다.

○…AFP와 AP.CNN 등 외국 언론들은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을 일제히 긴급 기사로 타전. AFP는 "남북한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함께 입장함으로써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고 평가했다.

AP는 "동시 입장은 개막식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았으며 통일을 향한 발걸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고 보도했다.

시드니올림픽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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